또다시 언론의 '단독'이 나왔다. 이번에는 무려 '문재인 대통령의 딸'이 연관됐다. 비리? 특혜? 사건 사고?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가 '정의당 당원'이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대통령인 아버지는 민주당 당원이고, 딸은 정의당 당원이라는 사실이 신기한가? 대통령 딸의 개인적 정치 성향에 '단독'을 붙여 보도하고 받아쓰기하는 언론사와 기자가 더 이상해 보인다.

별 내용 없는 대통령 딸 '정의당 당원' 뉴스에 '단독'은 과대포장이었다. 자꾸 '단독'을 남발하면 '단독 보도'의 가치가 떨어진다.  '단독'과 '최초 보도'로 구분할 필요도 있다.

'지상파부터 조선일보, 한겨레까지 천편일률적 복사 보도'

▲경향신문의 <단독, 문 대통령 딸은 정의당원> 보도 이후 비슷한 기사가 지상파와 조중동, 한겨레에서 나왔다.
▲경향신문의 <단독, 문 대통령 딸은 정의당원> 보도 이후 비슷한 기사가 지상파와 조중동, 한겨레에서 나왔다.


경향신문 손제민·이효상 기자가 쓴 <[단독]문 대통령 딸은 ‘정의당원’>이라는 기사가 나오자, 비슷한 제목과 유사한 내용의 기사 수십 건이 올라왔다. 언론사 중에는 KBS, MBC, SBS를 포함한 지상파는 물론이고, 종편과 조선일보, 한겨레도 포함돼 있다.

대통령의 딸이 정의당 당원이라는 사실이 대한민국 주요 언론사 모두가 보도할 가치가 있는 뉴스인가? 막무가내로 뉴스라고 우겨보자. 하지만 CTRL V를 눌러 복사한 듯 작성된 똑같은 기사를 보면 기성품처럼 찍어낸 기사 같다.

문 대통령 딸은 정의당 당원…이정미 대표와 ‘1987’ 관람도 (한겨레 2018-01-29 09:34)
문 대통령 딸은 정의당 당원…지난해 대선 뒤 입당 (한겨레 2018-01-29 10:55)

특히, 한겨레는 연합뉴스 기사를 자사 사이트에 올린 뒤 한 시간여 뒤에 비슷한 제목과 내용의 기사를 또다시 발행했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 딸 정의당 당원' 관련 기사를 반복해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35)가 정의당에 입당한 사실 알려짐
-이정미 대표와 영화 <1987> 단체 관람
-청와대 '소신에 따라 지지, 문 대통령도 이를 존중'
-지난 대선에서 광화문 유세 깜짝 등장

사실관계 네 줄을 짜깁기해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대단하고, 앞다퉈 제목을 바꿔가며 기사를 발행하는 언론사들도 참 뻔뻔해 보인다.

'정의당 '대통령 딸' 안았다? 어이없는 기사로 도배된 포털 뉴스'

▲문재인 대통령 딸 문다혜씨 관련 뉴스 ⓒ네이버뉴스 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 딸 문다혜씨 관련 뉴스 ⓒ네이버뉴스 화면 캡처


네이버에 <대통령의 딸>,<문재인 대통령 딸>,<문다혜>,<정의당 당원>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왔다. 그러자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가 쏟아졌는데, 그중에는 말도 안 되는 제목의 기사도 여러 건 보도됐다.

정의당 '대통령 딸' 안았다 (프라임 경제)
→ 문다혜씨는 스스로 당원으로 가입했을 뿐이다. 그런데 제목만 보면 정의당이 대통령의 딸을 영입한 것처럼 보인다.

[영상] 대통령 딸 문다혜 ‘정의당 평당원’ 입당한 이유는? (국민일보)
→ 제목만 보면 문다혜씨의 정의당 입당 이유가 영상으로 공개된 듯 하다. 그러나 클릭해보면 지난 대선 때 광화문 유세 모습과 심상정 대표의 동영상이다. 그냥 기자의 <30대 중반의 육아맘 다혜씨가 이 같은 정의당의 저출산‧육아 정책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는 추측성 기사였다.

‘정의당 입당’ 문다혜…박영선 “‘딸에겐 딸의 삶 있다’는 文 대통령 말, 응원” (동아일보)
→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트위터에 올린 짧은 글로 쓴 기사도 여러 건 올라왔다. 지난 광화문 유세에서 잠시 만났고, 응원한다는 내용이다. 뭐 이런 얘기가 기사가 될까 싶을 정도이다.

'국민이 알아야 할 뉴스를 볼 수 없는 세상' 

지상파부터 조중동, 한겨레까지 대한민국 언론이 왜 '대통령 딸 정의당 당원' 뉴스에 목을 매달까? 조회수가 많으면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기자의 명예', '언론사의 신뢰성', '언론의 공정성' 다 필요 없다. 오로지 클릭만 유도할 수 있다면 자극적인 제목, 비슷한 기사라도 올려야 한다.

언론사라도 수입이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사의 클릭 장사에 정작 시민이 알아야 할 뉴스가 뒤로 밀리고 안 보인다.

▲정의당 개헌 시안 공개 관련 뉴스에 '문재인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라는 문장이 들어간 서울신문 기사. ⓒ네이버 뉴스 화면 캡처
▲정의당 개헌 시안 공개 관련 뉴스에 '문재인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라는 문장이 들어간 서울신문 기사. ⓒ네이버 뉴스 화면 캡처


어제 정의당이 <국민을 위한 헌법 개정안>이라는 개헌 시안을 발표했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언론에서 외면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정의당 개헌 시안>으로 검색해서 나온 뉴스가 20건이 넘지 않았다. 조중동과 MBC, KBS는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1월 29일 오후 3시 기준)

모르고 지나칠 뉴스가 <문재인 대통령 딸. 정의당 당원>이라는 검색어에 걸리면 그나마 노출이 됐다. 정의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의 딸이 정의당을 안은 꼴이다.

대한민국 언론은 뉴스의 중요성과 가치보다 클릭률이 보도 여부를 결정한다.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한 기획기사, 깊이 있고 짜임새 있는 분석기사는 버림받고 자극적인 기사만이 살아남는 시대이다. 기자 대신 로봇이 기사를 쓰는 '로봇 저널리즘'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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