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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미디어가 직접 다녀온 홍콩 시위 현장, 한국과는 달랐다

2019년 12월 21일

1인미디어가 직접 다녀온 홍콩 시위 현장, 한국과는 달랐다

격렬했던 홍콩 시위를 직접 취재하기 위해 지난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홍콩을 다녀왔습니다.

도착한 첫날은 이미 자정이라, 다음날 일찍 홍콩 센트럴역 근처 IFC몰에서 열린  ‘런치 위드 유’ 시위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런치 위드 유’는 한국의 넥타이부대처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평화시위를 벌이는 집회입니다.

홍콩 시위의 특징은 정확한 시간과 장소가 사전에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수시로 시간과 장소가 변해 이날도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겨 다녔습니다.

홍콩 기자가 살짝 보여준 사진 한 장으로 찾아간 집회 현장은 우리나라와 사뭇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회 스피커나 마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현수막이나 피켓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프레스 조끼를 입은 취재진이 더 많았습니다.

이윽고 시간이 흐르자 누군가 손을 들고 ‘Five demands’를 외쳤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도 함께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Five demands’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이날 집회는 주최자가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구호를 외치면 주변에 있는 시민들이 함께 하고, 누군가 이어받을 뿐이었습니다. 이게 집회 맞아?라고 할 정도로 한국과는 달랐지만, 홍콩 시민들의 표정만큼은 간절해 보였습니다.

▲홍콩 센트럴역 근처 IFC몰에 출동한 경찰들. 취재하는 아이엠피터를 향해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며 곤봉을 내밀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20여분이 지나자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왔습니다. 그러나 강경 진압은 없었습니다.

경찰들의 복장은 한국에 비해 중무장한 상태였습니다. 곤봉과 권총, 방패, 최루탄, 체포용 케이블타이 등을 소지한 경찰들은 대부분 복면을 착용했습니다.

홍콩 경찰은 한국 경찰처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습니다. 컨테이너로 거리를 막지도 차벽도 없었습니다.

홍콩은 소수의 경찰들이 승합차를 타고 다니다가 시위대를 만나면 재빠르게 정차합니다. 경찰들은 해산하지 않으면 최루탄을 발사하겠다는 경고 현수막을 펼친 뒤 곧바로 최루탄을 쏘고 후다닥 자리를 떠납니다.

시위대에 비해 경찰 병력이 적은 탓입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 공안과 군대가 홍콩 시민들 강경 진압하러 온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홍콩 센트럴 IFC몰에서 있었던 ‘런치위드유’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끝났습니다.

투표를 앞두고 조용했던 거리,  곳곳에 그날의 흔적들이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홍콩 몽콕 시내 거리. 곳곳에 시위 때 사용했던 벽돌 잔해가 남아 있었다. 일부는 보도블록 대신 시멘트로 포장을 했다.

홍콩을 취재하는 기간에는 11월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를 앞두고 집회와 시위를 자제하자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홍콩 시내는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집회는 없었지만, 몽콕 거리는 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인도마다 보도블록이 모두 파헤쳐 있는 까닭에 걷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일부는 아예 시멘트로 메꿔놓았습니다.

지하철역 입구마다 시위대가 적어 놓은 구호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저녁이 다가오자 지하철은 몽콕역 등 시위가 벌어질 역은 정차하지 않고 운행됐습니다.

거리에는 시위대에 의해 훼손된 중국계 상점들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상점들은 임시로 천막이나 가벽 등을 설치했고, 영업을 일찍 끝냈습니다.

시위가 진정 국면에 들어섰는지 구호가 적혀 있는 도로중앙분리대를 페인트로 지우는 작업도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몽콕 거리는 여전히 긴장된 분위기였습니다.

홍콩 이공대에 숨어있는 학생들, 그러나 들어갈 순 없었다 

▲ 홍콩이공대학교 입구. 경찰들이 출입할 수 있는 지역마다 모두 통제하고 있었다. 학생은 물론이고 기자도 출입이 금지됐다.

11월 23일 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던 ‘홍콩이공대학교’를 찾았습니다.

900여 명의 시위대가 남아있던 홍콩이공대는 11월 17일에 벌어졌던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대부분 체포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는 학교에 숨어 있었습니다.

홍콩이공대 앞은 경찰들이 물 샐 틈 없이 입구를 막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경찰들이 짜증을 부리듯 촬영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프레스 조끼를 입었지만 기자들도 학교 내부를 취재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 남아 있던 같은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서로 교대만 할 수 있었습니다.

출입을 통제하는 정부 관계자에게 학생이 몇 명이나 남아 있느냐고 물었지만, 자신들도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때마침 학교에 있다 교대하는 한국인 외신기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외신기자는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을 만나 취재했느냐는 질문에 기자들도 찾기 힘들 정도로 은밀하게 숨어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학교 내부는 학생들이 아니라 기자들이 더 많이 보인다고 내부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지난 25일 홍콩구의원 선거에서 범야권이 압승한 뒤에 홍콩이공대 앞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의 구조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후 29일 경찰은 이공대학교 봉쇄를 해체하고 철수했습니다.

홍콩을 취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홍콩 학부모와 학생들이 참여한 최루탄 반대 시위를 취재하는 아이엠피터

홍콩 취재 기간은 격렬한 시위가 없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취재를 위해 준비해 갔던 방독면과 고글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홍콩 취재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외신 기자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만약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나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이 정도로 외신기자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한국 언론사들도 꽤 많이 홍콩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그 가운데 길바닥저널리스트, 미디어몽구, 복진오 독립PD등 1인미디어들도 있었습니다.

워낙 많은 언론이 취재를 했기에 특종이나 단독보도 등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홍콩 취재를 통해 홍콩 시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 과정은 세계 어느 나라이든 쉽지 않다는 사실도 느꼈습니다.

▲ 2019년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후원계좌와 CMS로 후원해주신 분들. 펀드는 약정서에 서명하고 입금하신 분들입니다. 미입금자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홍콩 취재를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수입은 뻔한데 만만치 않은 취재비를 감당하다 보면 잔고가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생활비를 줄이고 줄여 갔다 온 홍콩 취재는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엠피터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의 사용 목적은 취재입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아이엠피터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일반 언론사도 하기 힘든 홍콩 취재를 하고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오로지 후원자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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