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만 18살이 되면 결혼도 할 수 있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군대도 가고, 운전면허 취득도 가능합니다. 다만, 투표는 하지 못합니다.

18살이 투표를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뜻인데, 과거 나이가 어려도 결혼을 해서 상투를 틀면 어른 대접을 해주었던 한국 사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정치권과 어른들은 청소년들은 사회 경험이 적어 정당 및 후보자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고, 교사에 의해 학생들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선거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언제 정치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던가?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식 모습. ⓒ연합뉴스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식 모습. ⓒ연합뉴스


정치블로거로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도대체 나는 학교에 다닐 때 정치에 관해 무얼 배웠냐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있습니다. 바로 '국민교육헌장'입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국민교육헌장)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 당시는 국민학교이던 시절에 학교에 가면 꼭 외워야 했고, 암기하지 못하면 매를 맞았던 '국민교육헌장'은 오십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역사를 배웠지만, 정치인들은 그저 시험에 나오는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파업을 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헌법에 명시돼 있다는 사실도 어른이 되고 알았습니다.

학생들이 교사에 의해 정치적 판단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정치'를 배우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면 됩니다. 그런데 또 정치 교육은 어린 학생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반대합니다. 모순입니다.

독일은 1970년부터 '정치교양' 과목을 학교에서 배웁니다. 프랑스는 1985년부터 영국은 2002년부터 '시민교육'을 중학교 교육 필수과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시민교육에는 정당의 역사와 이념을 자세히 배우고, 노동과 노조의 현황도 알 수 있도록 자세히 소개합니다.

교실이 정치화되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학교에서 더 자세하고 풍부한 정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순히 투표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꼭 필요한 시민의 기본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경험한 아이들

▲ 2014년 5월 3일 3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희생자들의 추모 청소년 촛불집회에서 추모 메세지가 적힌 노란종이를 든 참가자들 리본 모양을 만들어 '친구들이 아직 여기 있습니다'가 적힌 세월호 모형을 둘러 싸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희훈
▲ 2014년 5월 3일 3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희생자들의 추모 청소년 촛불집회에서 추모 메세지가 적힌 노란종이를 든 참가자들 리본 모양을 만들어 '친구들이 아직 여기 있습니다'가 적힌 세월호 모형을 둘러 싸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희훈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요즘 청소년들은 똑똑합니다.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청소년들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 어른들 못지않게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습니다.

아이라고 무시했지만, 그 어떤 어른보다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의 삶이 결코 정치와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가장 기본적인 '18세 선거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18세 선거권'을 위해 삭발도 하고, 시위도 하고 집회와 행진도 벌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한국당은 선거 나이를 한 살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일베와 일진 청소년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하나?

지난 3월 5일 국회에서는 '만 18세 선거권 시대를 준비하는 국회 토론회 : 교실의 정치화 논란, 해법은 없나'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청소년들도 함께 참석해 선거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습니다.



토론회 도중 '일베와 일진 청소년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하나'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아직도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줄 수 없다는 사회의 우려가 있다는 질문이었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이찬영 학생은 질문에 "어른 중에서도 일베를 하고 일진이고 약간 나쁜 어른들 있잖아요"라며 "그거랑 같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라고 대답합니다.

실제로 일베를 한다고 선거권이 박탈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범죄를 저질러 수형 된 경우나 가석방자 등에게만 선거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집행 유예자도 선거권을 박탈당했지만,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려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 3.1절 기념식이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청소년 참정권 피켓 시위를 하는 모습. 이날 광장에 온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피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 3.1절 기념식이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청소년 참정권 피켓 시위를 하는 모습. 이날 광장에 온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피켓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일제강점기 만세운동을 했던 유관순 열사도, 4.19 혁명에 참가했다 목숨을 잃은 김주열 열사도 학생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박근혜 탄핵 집회에도 청소년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정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 나왔던 어른들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깨어 있습니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만으로 선거를 할 수 없다는 자체가 더 이상합니다.

3월 5일 토론회에 참석했던 이찬영 학생은 심상정 의원실에서 공문을 보냈지만, 학교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아 무단결석을 하고 국회에 왔다고 합니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낡은 생각이 오히려 한국의 정치와 교육, 사회를 더 퇴보시키는 원인이 아닐까요?

유튜브에서 바로보기:일베와 일진 청소년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하나?



저작권자 © 아이엠피터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