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혔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수재들만 간다고 하는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나온 젊은 청년의 입에서 '종북', '주사파', '이딴 게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과거 서북청년단을 보는 듯했다.

친구들과 술 마시는 자리도 아니었다. 무려 대한민국 제1야당 합동연설회의 연단에서였다. 야당 청년 최고위원 후보의 선거 연설이지만, 지성도 품격도 논리도 전혀 없는 그저 악다구니에 불과했다.

'종북 주사파 문재인 정권을 탄핵시키지 못하면 자유대한민국은 멸망하고 적화통일이 돼 북한 김정은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의 발언이 지지를 받는 모습은 이미 자유한국당이 극우정당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자유한국당으로 8000명 입당한 태극기부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뚜껑을 열기 전에는 황교안 전 총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2파전을 내다봤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히 김진태 후보 세상이었다.

비대위원장이 나와도, 전당대회를 주관하는 의장이 나와도 꺼지라는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고,  '김진태'라는 이름만 장내를 뒤흔들었다.

▲1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김진태 후보. 이날 김 후보 지지자들은 국회 앞 계단을 가득 메웠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1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김진태 후보. 이날 김 후보 지지자들은 국회 앞 계단을 가득 메웠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가 김진태 후보가 주도하는 판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강력한 태극기부대가 있었다.

이번 전대를 목표로 지난해 6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 태극기 부대에서 약 8000명 이상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태극기부대 출신 당원들이 김진태를 지지한다는 것은 지난 1월 23일 국회에서 있었던 김 후보의 당 대표 출마 선언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국회 앞 계단을 가득 메운 지지자들을 보면 다른 후보자들은 기가 죽을 정도로 엄청난 인원이 모였다.

이날 김진태 후보 지지자들이 전달해준 '3만 책임당원 입당원서'가 진짜라면, 이미 자유한국당은 태극기부대에 점령당했다고 봐야 한다.

투표는 끝까지 모른다고 하지만, 만약 김진태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되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자유한국당 공식적인 조직은 그들을 제지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다. 오로지 김진태 후보만이 그들을 움직이고 통제할 수 있다.

김진태, 우파가 싸우기 위한 무기 5.18

▲김진태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는 지난 1월 극우방송 뉴스타운TV와의 인터뷰에서 우파의 무기 중에서 5.18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JTBC 뉴스 화면 캡처
▲김진태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는 지난 1월 극우방송 뉴스타운TV와의 인터뷰에서 우파의 무기 중에서 5.18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JTBC 뉴스 화면 캡처


김진태 후보는 극우방송 '뉴스타운TV'와의 인터뷰에서 '우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또 싸워야 될 무기 중에서는 이 5.18이라는 것이 굉장히 크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5.18이 문재인 정권 투쟁하는데 좋은 무기가 된다'고도 말했다.

그렇다. 전당대회 일정이 시작되기 직전 지만원씨를 데려다가 국회에서 5.18 공청회를 열고, 이슈를 점령했던 배경에는 극우를 결집하는데 5.18이 효과적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진태 후보는 친박조차 자신의 배경이 되지 않는다면, 외부 세력이었던 태극기부대를 끌고 들어 오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가고 있다.

태극기부대는 왜 김진태 후보를 당대표로 밀고 있을까? 혹시 대한애국당과의 통합을 노리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김진태 후보가 당대표로 되면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대한애국당은 조원진 의원만 오케이 하면 끝날 일이다.

극우가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국회와 정당의 정치 지형이 완전히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극우정당이 되는 순간, 자유한국당 총선은 망했다고 봐야 한다.

▲자유한국당 지지도 일간 집계. 5.18망언과 꼼수 징계 논란이 불거지자 지지율이 떨어졌다. ⓒYTN뉴스 화면 캡처
▲자유한국당 지지도 일간 집계. 5.18망언과 꼼수 징계 논란이 불거지자 지지율이 떨어졌다. ⓒYTN뉴스 화면 캡처


자유한국당 당대표 인터넷 토론회에서 김진태 후보는 중도보수층이 떨어져 나간다는 오세훈 후보의 지적에 보수를 결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극우를 결집해 당을 꾸리는 순간, 자유한국당은 패당의 지름길로 들어선다.

실제로 5.18 망언이 터지고, 꼼수 징계 논란이 벌어지자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국민의 관심을 받아야 할 전당대회는 막말과 고성, 욕설 등으로 오히려 외면받고 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중도층이 있었다. 기존 보수 성향 지지자들과 이들이 합쳐져, 매번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했었다.

촛불혁명이라는 사상유례 없는 역사적 사건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중도와 보수가 가진 힘이 막강하다. 그래서 기본 지지율에 얼마를 더하느냐가 보수가 정권을 잡는 기준점이 됐다.

이랬던 자유한국당이 중도층을 버리고 극우를 선택하는 순간, 그저 규모가 큰 대한애국당 수준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진태 후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한국당의 운명보다는 자신이 당대표가 되지 않으면 당에서 축출당할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보면 김진태 후보는 살고, 당은 죽어가고 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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