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산골소년, ‘메이저리거’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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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초등학교 입학식 때 요돌군은 어린 아이였지만, 2018년 졸업식의 요돌군은 아빠보다 키가 더 크다.

요돌군이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2012년 입학식 때는 한글도 잘 모르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돼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주의 외진 산골 초등학교, 입학생은 고작 5명뿐이었습니다. 그중에 남자는 요돌군 혼자였습니다.

전교생이 40명이 넘지 않아 다른 학교와의 통폐합이 추진됐고 곧바로 폐교 위기에 빠졌습니다. 학교를 살리기 위해 마을 전체가 노력해  ‘공동 주택’을 건축했습니다. 외부에서 전학생들이 오면서 다행히 학교가 살아남았습니다. 입학할 때는 5명이었던 요돌군의 친구가 졸업할 때는 11명이나 됐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는 아빠만 찾으며 찰싹 달라붙어 있던 아이였습니다. 졸업식 때는 아빠하고 사진 찍는 것이 싫은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네요. 살짝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1학년 때만 해도 소심한 성격이고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이 방과 후에 과외(?)를 통해 부족한 진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질문도 잘 하지 못했던 요돌군이 6학년 때는 워낙 말이 많아 시끄러울 정도가 됐습니다.

제주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가 아이들이 시골 학교에 다니는 것입니다. 원 없이 뛰어놀고 장난치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행복하게 초등학교 생활을 마친 듯합니다.

▲상단 좌측부터 1학년~6학년 요돌군의 얼굴 변천사

요돌군의 졸업식을 갔다 와서 어릴 적 사진들을 살펴봤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요돌군의 모습은 귀여웠습니다. 아빠가 아닌 엄마를 닮아 얼굴도 하얗고 피부도 깨끗했습니다.

3학년까지만 해도 아이 티가 나던 요돌군이 4학년에 올라가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볼살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똥배까지 나왔습니다. 다이어트를 시켜야겠다는 고민까지 했습니다. 이랬던 요돌군이 5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키가 쑥 커졌습니다. 살도 함께 빠졌습니다.

5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코 밑이 거뭇거뭇해지더니 6학년 때는 남자 티가 확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신발이며 옷이고 성인용을 입고 다닙니다.

아빠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어릴 적 귀여운 요돌군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굵은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는 웬 선머슴 같은 남자가 제 곁에 있네요.

▲요돌군과 에순양은 어릴 적부터 밥을 잘 먹지 않거나 편식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오히려 아빠가 편식을 하는 편이다.

요돌군의 키를 보면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졸업식 때 상장을 받으러 나가는 모습을 본 동네 어르신들이 도대체 누구냐고 묻더군요.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하면 믿질 않습니다.

‘뭘 먹였길래 저리 키가 컸느냐’라고 묻습니다. 사실 특별하게 먹인 것이 없습니다. 그냥 뭐든지 잘 먹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편식이 뭔지 모르고 자랐습니다. 오히려 에순양하고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 통에 닭도 두 마리, 햄버거도 두 개씩 사줘야 했습니다.

장인이 농사를 지으셔서 매년 쌀을 보내주시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요돌군은 밥을 먹고 5분만 지나도 배가 고프다고 냉장고와 찬장을 뒤집니다. 아빠도 밥을 많이 먹는 편인데 이제는 요돌군의 밥그릇이 훨씬 큽니다.

어제는 장염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배가 고프니 닭을 사서 구워 먹자고 하더군요. 한 마리는 부족하다며 두 마리를 카트에 담았습니다. 요돌군은 초코파이 한 박스를 앉은 자리에서 다 먹습니다. 야구 훈련이 끝나면 꼭 편의점에 들려 햄버거를 사 먹고 옵니다. 물론 집에 와서 밥도 먹습니다. 운동하면 할수록 자꾸 더 먹습니다. 그렇게 먹고도 복근이 생기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2018년 1월 1일~1월 31일까지 후원계좌와 오마이뉴스 좋은 기사 등으로 후원해주신 분들.

요돌군이 무사히 건강하게 졸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후원자’분들이 계십니다. 저 먹성 좋은 아이들을 글만 써서는 결코 키울 수 없었습니다.

한창 크는 아이들 고기 먹이라고 후원해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때 행여 선물을 받지 못할까 봐, 때마다 용돈을 주시기도 합니다. 옷이며 학용품을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아이엠피터를 만나면 꼭 아이들 얘기를 묻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관심을 두고 지켜봅니다. 항상 아빠보다 더 요돌군과 에순양을 걱정하고 챙겨줍니다.

이토록 사랑을 받고 자라다 보니, 크게 모나지 않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6학년 마지막 연주회를 마치고 베이스 클라리넷을 들고 나오는 요돌군 (좌측) 예비 입학생이지만 작년 11월부터 제주 도내 유일한 중학교 야구팀인 제일중에서 훈련을 받는 요돌군. 학교는 두발 자율화이지만 야구부는 예외다.

요돌군은 졸업식에서 자신의 장래희망을 ‘메이저리거’라고 밝혔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베이스 클라리넷을 취미로 하지 왜 굳이 야구를 택했는지 답답했습니다. 메이저리그는커녕 고교 야구 선수 중에 프로구단에 에 들어갈 확률은 고작 10%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야구 선수가 얼마나 힘들고 성공하기 어려운 직업인지 알려줘도 포기할 수 없답니다. 야구가 너무 재밌고 운동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말에 아빠가 포기했습니다. 요돌군의 꿈을 어떻게 도와줄지도 참 막막합니다.

남들은 30만 원짜리 선수용 글러브로 운동할 때 요돌군은 5만원짜리 취미용을 사용했습니다. 손이 커져서 맞지 않는 글러브를 끼고 운동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번에야 겨우 졸업식 선물로 10만원짜리 외야수 글러브를 장만해줬습니다. 좋아하는 요돌군을 보면서 진작 사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누군가는 “돈도 못 버는 정치 글을 쓰면서 아이를 야구 선수로 키우는 것은 무리다”라고 말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밀려 아이의 꿈을 짓밟고 싶지는 않습니다. 비록 비싸고 좋은 야구 장비를 사주는 아빠는 아니더라도 아이의 목표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먼 훗날 요돌군이 진짜 ‘메이저리거’가 되면 이 글이 ‘성지’가 되겠죠?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