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를 탔는데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안내가 나오면 대부분 당황한다. 카드 잔액 부족으로 1만원 지폐를 내면 8천원이 넘는 잔돈을 모두 동전으로 받기도 한다. ⓒ서울시
▲ 버스를 탔는데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안내가 나오면 대부분 당황한다. 카드 잔액 부족으로 1만원 지폐를 내면 8천원이 넘는 잔돈을 모두 동전으로 받기도 한다. ⓒ서울시


지하철도 없고, 버스도 자주 타지 않는 제주에서는 교통카드를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오랜만에 서울에 와서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면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소릴 간혹 듣습니다.

교통카드에 잔액이 부족해도 현금이 있으면 내고 타면 됩니다. 그러나 지갑에 카드만 있으면, 갑자기 땀이 삐질삐질 납니다. 뒤에서 승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은 물론이고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돈도 없이 버스를 타느냐'라며 손가락질하는 착각도 듭니다. 사실 당사자인 저보다 승객들이 더 안타깝다고 느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잔액이 부족하면 '충전이 필요합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서울에서 이런 음성 안내를 듣고 '왜 제주는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충전이 필요합니다'라고 바뀐 것은 서울시가 아닌 시민의 아이디어였습니다.
Q::교통 카드 잔액이 적은데 환승할 수 있나요?
A:잔액이 250원 이상만 남으면 다음 버스를 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충전 후 탑승을 권장합니다.
Q:교통카드에 요금이 부족해도 탑승할 수 있나요?
A:은행의 마이너스 통장처럼 잔액이 없어도 일단 버스에 탄 다음에 나중에 충전할 때 마이너스 금액을 빼고 충전이 된다고 알려진 내용인데, 사실이 아닙니다. 모든 교통카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티머니 마이너스'라는 카드만 됩니다. 그러나 이 카드는 2007년에 도입됐다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결론은 불가능합니다.

'여성 안심택배함에 구급차 LED 전광판, 일요 휴무 약국 안내까지 모두 시민제안'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멘트가 '충전이 필요합니다'라고 바뀐 것은 시민 최미경씨가 서울시 정책 아이디어마켓에서 제안을 해서 채택된 결과입니다. 최미경씨는 버스를 탈 때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멘트 때문에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서울시 정책박람회 등에 나왔던 시민제안들이 정책으로 실행된 사례들 ⓒ서울시
▲서울시 정책박람회 등에 나왔던 시민제안들이 정책으로 실행된 사례들 ⓒ서울시


서울시 정책 중에서 시민들의 제안으로 실행이 된 사례는 꽤 많습니다. 1인 여성 가구가 늘면서 택배 받는 것이 곤란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 1인 가구 밀집 지역에 무인택배함을 설치해, 원하는 시간에 물건을 수령할 수 있는 '여성안심택배함' 시설도 시민의 아이디어에서 나왔습니다.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할 때 신분증을 제시해달라는 '신분증 자동 안내 멘트', 구급차가 응급환자를 이송하는지,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지 상황을 안내하는 '구급차 LED 전광판', 일요일에도 영업 중인 약국을 안내해주는 '일요일 휴무약국 안내표시' 등도 시민들이 제안해서 운영되는 정책들입니다.

시민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는 시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정책들이 많습니다. 공무원 눈높이가 아닌 시민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 말이 씨가 된다. 서울시는 귀를 시민은 입을 열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서울시청, 서울시의회, 시민청, 서울광장 등에서'정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서울시
▲서울시는 2012년부터 서울시청, 서울시의회, 시민청, 서울광장 등에서'정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서울시


시민들이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내고, 서울시가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서울시 정책박람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시는 매년 '정책박람회'를 개최했습니다. 2012년은 '서울을 점령하라'는 슬로건으로 시민들의 소통과 참여를 유도했습니다. 2013년은 '말이 씨가 된다'라며 시민들의 제안을 정책으로 만드는 행정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 정책박람회는 2014년 '서울 귀를 열고 시민 입을 열다', 2015년 '천만 시민의 이유 있는 수다', 2016년 '시민의 삶과 마음을 담다'까지, 매년 다양한 주제와 방식 등으로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를 서울시 실정에 맞게 도입한 '서울시 정책박람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깊고 폭넓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시민이 제안하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2017년 서울시 정책박람회는 온라인 투표와 함께 7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 동안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시민제안으로 선정된 시민의제 온라인 투표는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시
▲2017년 서울시 정책박람회는 온라인 투표와 함께 7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 동안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시민제안으로 선정된 시민의제 온라인 투표는 6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시


올해도 서울시 정책박람회가 열립니다. 2017년은 '서울이 민주주의다'라는 주제로 시민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현재 시민의제 공모를 통해 5개의 의제가 선정됐습니다. 시민민의제는 온라인 사전투표(6월 5일~6월 30일)와 7월 8일 서울광장 현장투표로 결정됩니다.

'아기가 태어난 가정에 산모와 아기에게 필요한 생활용품키트를 지원할까요?'
'반려동물을 위한 공영 장례시설(화장장이나 수목장)이 필요할까요?
'보행 중 흡연금지와 금연거리 확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나 정기적으로 마음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지원제도가 필요할까요?'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가구에 교통비 지원제도가 필요할까요?


▲시민들의 선택으로 추진되고 있는 서울시 10대 혁신정책, 서울시 정책박람회에서 관련 부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서울시
▲시민들의 선택으로 추진되고 있는 서울시 10대 혁신정책, 서울시 정책박람회에서 관련 부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서울시


이번 서울시 정책박람회에서는 '10대 혁신정책 상담부스'가 운영됩니다. 관련 부서 및 제안자가 운영하는 상담부스로 정책을 홍보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의견이나 조언도 함께 들을 예정입니다.

10대 혁신정책을 보면 '초미세먼지 20% 줄이기','원전 하나 줄이기'와 같은 환경 정책이 있습니다. '심야택시 승차난 해소를 위한 콜버스','심야전용 올빼미 버스 확대 운영' 등 교통 정책도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정책처럼 역사를 기억하거나 '청년지원활동금 청년수당','저소득층 청소녀 생리대 지원'과 같은 일자리, 복지 정책도 있습니다.

서울시 10대 혁신정책은 일회성 정책이 아니라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제안함으로, 장기적이고 실현 가능성 있는 정책으로 계속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광장 민주주의를 현실 정치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을 외치며 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집회가 끝난 뒤에도 시민발언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혔다 ⓒ아이엠피터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을 외치며 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시민들은 집회가 끝난 뒤에도 시민발언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혔다 ⓒ아이엠피터


2016년 추운 겨울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의 암울한 정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습니다.

시민들은 단순하게 촛불을 들고 구호만 외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개혁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단순히 집회로 모였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민들 스스로가 마이크를 잡고 현실 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정치를 정치인에게 무조건 맡겨놓는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시민들이 정책을 제안하고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보완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 정책박람회'는 시민들의 정책 제안을 아주 효과적이면서 빠르게 적용하는 시민 참여 기회이기도 합니다.

'서울시 정책박람회가 7월에 열리는 까닭은?'

▲서울시 정책박람회에서 시민이 자신이 제안하는 정책을 박원순 시장에게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서울시 정책박람회에서 시민이 자신이 제안하는 정책을 박원순 시장에게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


원래 서울시 정책박람회는 보통 9월에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7월에 개최됩니다. 5월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인수위원회 활동과 연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제안을 정책으로 바꾸려면 7월에는 결정해야 내년도 예산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보통 예산 편성을 7~8월에 하기 때문입니다. 9월 전에 시민정책이 반영되지 않으면 2년 이상 지체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흔히 대규모 국가 정책이 곧바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책은 출퇴근 때 타는 버스나 지하철, 혹은 우리 아파트, 동네 골목길 등에 숨어 있습니다. 얼마나 현실적인 시민의 삶이 정책에 반영되느냐가 '시민 행복 지수'가 되기도 합니다.

시민들은 '내가 정책박람회에 참여한다고 서울시가 바뀔까'라는 의심을 합니다. 그러나 역대 서울시 정책박람회에 나와 선정된 시민 제안들은 실제로 정책에 반영됐습니다.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지속된다면, 진정한 시민주도의 정책 생산이 가능합니다. 서울시의 주인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2017 서울시 정책박람회’가 됐으면 합니다.

'2017년 서울시 정책박람회: 시민이 결정할 정책의제5 시민투표'
'2017년 서울시 정책박람회: 시민작당모의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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