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민폐’ 논란으로 본 노무현 ‘군 방문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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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표의 군부대 방문에 대한 보도 ⓒ연합뉴스 캡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당직자, 국방위원들과 추석을 맞아 9월 6일 경기도 파주의 육군 포병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취침하고 야간 근무까지 체험한다고 합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새누리당 대변인은 “명절에도 고향에 못 가는 전방 장병들의 노고를 위로하려는 자리인 만큼 잠시 잠깐 방문해 기념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방식의 형식적인 행사는 지양하려는 것”이라며 “집권여당으로서 겉치레가 아닌 ‘현장 중심’의 민생 행보를 보이려는 의지가 반영됐다”고 밝혔습니다. (관련기사:집권여당 대표의 ‘색다른 한가위’…내무반서 병사들과 하룻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일행의 군부대 방문은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높은 사람들이 오면 장병들이 고생하는데 굳이 가느냐’는 주장부터 ‘노무현, 문재인은 되고, 이정현은 안된다는 이유가 뭐냐’는 반박도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군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군부대 방문 비화를 통해 정치인들의 군대 방문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현역미필 많아 난감했던 ‘TV내무반 신고합니다’에 출연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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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TV내무반 신고합니다’에 출연한 노무현 대통령과 현역미필이 많아 출연진 섭외가 힘들다는 신문 기사 ⓒKBS,동아일보 캡처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군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TV내무반 신고합니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TV내무반 신고합니다’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출신 부대를 방문해 현역 장병과 만나 군 시절을 회상하며 옛 전우를 만나는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제작진들은 모두 병장 출신으로 구성됐는데, 불과 10회 만에 출연진 섭외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국회의원을 섭외하려고 전화를 해보면 상당수가 미필자거나 방위병 출신이라 출연할만한 정치인들이 극히 한정됐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의원은 1968년 전방 을지부대에 복무하다 1971년 상병 만기 제대를 해 출연이 가능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병 만기 제대를 한 이유는 당시에 존재했던 계급별 정원 때문)

1999년 3월 방송된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을지부대 편에는 노무현 의원과 함께 갔던 예비역 아버지가 철책에 근무하는 아들을 만나는 장면이 방송됐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아버지들이 이 장면을 보고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이등병의 패기에도 웃으며 선뜻 응했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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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이등병이 노 대통령에게 유행어를 요청하는 장면 ⓒSBS 캡처

노무현 대통령의 군부대 방문 모습 중 아직도 화제가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군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등병이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유행어를 해달라는 장면입니다. 노 대통령은 ‘근데 요새 이병도 용감하네요’라며 ‘괜찮습니다. 괜찮고요’라는 말로 받아 주기도 했습니다.

노 대통령 뒤에 있는 부대장은 웃고 있었지만, 내무반 선임들은 뜨끔했을 것입니다. 군 계급에서 가장 낮은 이등병이 군 통수권자에게 감히 유행어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무현 정권에는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유행어를 가지고 정치 풍자를 했던 시절이었고, 누구나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말해도 잡혀갈 염려도, 고소, 고발 당한 일도 없었습니다.

‘경호원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장병의 갑작스러운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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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갑자기 껴안은 장병 ⓒ노무현재단

2004년 12월 프랑스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은 비밀리에 이라크에 있는 자이툰 사단을 방문합니다. 장병들을 만나 이동하던 중 갑자기 한 병사가 뛰어나와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라며 노 대통령을 안고 한 바퀴 돌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경호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리 자국의 군인이지만 갑자기 대통령에게 돌진했기 때문입니다. 제대 후 김준석 상병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안기 위해 뛰어나갔을 때) 그 순간 검은 복장의 경호 요원들이 나를 제지했고, 이어 ‘큰일났다. 이거 내가 잘못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지휘관들로부터 “대통령님이 다치면 어떻게 할 뻔 했나”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뒤탈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대통령 껴안았던 자이툰 부대 김준석 상병)

‘자이툰 병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린 노무현’ 

갑작스러운 병사의 포옹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다칠라’고 하면서도 활짝 웃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자이툰 부대 병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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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 사단 방문을 마치고 지프차에 탑승해 눈물을 훔치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재단

2003년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료지원단인 ‘제마부대’와 건설지원단인 ‘서희부대’를 파병했지만, 미국은 더 많은 전력의 파병을 요구했습니다. 북핵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던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8천 명 규모의 사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합니다.

당시 이라크에 파견된 자이툰 사단의 파병은 비공개로 진행됐고, 국민의 지지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약소국의 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국의 요청에 자국 병사를 파병시켰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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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군부대 방문 모습과 자이툰 부대 방문 1년 뒤에 보낸 편지 ⓒYTN캡처,노무현재단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고 그로부터 1년 뒤, 노무현 대통령은 자이툰 부대 장병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인정받지 못한 파병으로 마음 상했던 장병들은 자신들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낸 노무현 대통령의 배려가 신기하면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군대에 오면 장병들은 힘듭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 군대 생활할 때는 높은 사람 오면 힘들었는데’라며 그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어도 ‘그래도 제대하고 싶나?’라고 묻는 대통령과 ‘네’라고 대답하는 군인들, 노 대통령은 군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정치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높은 사람들이 군대를 방문하는 행사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방문이 진정으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틀에 박힌 격려보다 아들을 면회하고 오는 길에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가야 합니다.

오랜만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니, 군대 면회 후 어머니 몰래 건빵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며 ‘PX가서 고참 몰래 맛있는 거 사 먹어라’는 아버지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