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아이엠피터?

민학교 시절, 박정희가 죽으면 전쟁이 날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는 줄 알았다. 시흥대로를 통과하는 군용트럭이 광주에 침투한 간첩을 소탕하러 간다기에 외삼촌이 무사히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올 때마다 과자선물 세트를 사오던 외삼촌은 빈손으로 밤중에 집으로 왔다. ‘광주에 무장간첩 많아?’라는 물음에 외삼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두환이 해외를 나갈 때마다 좋았다. 수업을 하지 않고 양화동 인공폭포에 가서 태극기를 흔들다가 왔기 때문이다.

9007779075341232_1-sfpeter군대 가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1989년 임수경이 평양에 갔을 때도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알아도 그가 평화민주당 총재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적당히 놀다가 입대한 군생활이 남긴 것은 낙하산 타고 내려오다 십자로에서 무릎접지로 얻은 관절염 뿐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미국에 가기만 하면 명문대 졸업장을 따서 한국으로 금의환향 할 줄 알았다.

미국에서 처음 사용한 이름은 Byeoung do Im이다. 1997년 친절하신 여권 담당자분이 한글 영문 변환표를 보시고 만들어준 이름이다. 물론 잘못된 표기법이다.Byoung do Im으로 써야 되는데 쌩뚱맞게 e가 하나 들어갔다. 여권 이름으로 시작한 미국 생활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바로 외국애들이 도통 내 이름을 발음하지 못했다. 내 이름은 ‘바잉 임’,’두 임’,’미스터 아이엠’으로 불리곤 했다.

운전면허증1DMV에 가서 한글 이름 앞에 영어 이름 Peter를 붙였다. 중간에 한글이름이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나를 ‘아이엠피터’라고 불렀다. 여기서 im은  I am의 준말이 아니라 라스트 네임 IM(수풀 林이 아닌 맡길 任)이었지만, 결국 내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아이디는 impeter가 됐다.

하루 12시간 리커스토어에서 못하는 영어로 히스패닉 손님들과 씨름하고 집에 오면 씻을 틈도 없이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못했던 공부는 내 길이 아니었다.  공부도 사업도 완벽하지 못했던 나에게 돌아온 유일한 칭찬은 한인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이었다. 사업자 퍼밋 발급 받기 등 기초적인 정보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라며 글을 읽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다

2002년 칼럼을 썼던 기억을 떠올리며 네이버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썼다. 업무상 일본을 오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미국 뿐만 아니라 일본 이야기도 썼다. 조회수가 많아지는 만큼 악플도 많이 달렸다. ‘ 그렇게 미국이 좋으면 양키 고홈’,’ 쪽발이 XX가 감히’

한국을 미국,일본과 비교하면 매국노가 됐다. 비교하지 말고 한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살피다보니 정치가 핵심이었다. 정치가 한문으로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정치 뉴스를 읽기 시작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수록 좌절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벽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눈높이에 맞게 글을 쓰는 일이었다.

2008년 네이버에서 티스토리로 블로그를 옮겼다. 당시 전문 분야에서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티스토리에서 활동했고, 다양한 편집 기능으로 블로거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티스토리를 선택했다. 다음뷰를 통해 사람들에게 점점 정치블로거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하마나호는 세월호처럼 저녁 6시에 인천에서 출발 다음날 아침 제주항에 도착한다.

글을 쓰면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지식이 없기에 자료를 찾을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거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소요됐던 시간이 2시간이라면 정치글은 4시간, 많게는 10시간까지는 걸렸다. 회사 생활과 병행하는 자체가 힘들었다. 자료를 더 찾고 싶었다. 매일 글만 쓰면서 살고 싶었다. 전업블로거로 인생을 살기로 결정하고, 2010년 11월 8일 만삭의 아내와 함께 인천에서 청해진 해운의 ‘오하나마나’호를 타고 제주로 내려왔다.

아내는 참 신기한 여자였다. 남편이 가자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를 무턱대고 따라 온 것도 이상했지만, 출산을 불과 몇 주 앞두고 있는데도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지?라는 말조차 없었다. ‘남편이 굶겨 죽게 하지는 않겠지’ 라며 태풍이 몰아치는 배에서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뜨개질만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글을 쓰기 위해 내려온 제주는 천국이었다. 한적한 시골마을, 차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온종일 글만 썼다. 자료를 찾다가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지만, 낮에 잠을 잘 수 있으니 문제가 없었다.

1사랑하는나의딸딸이 태어났다. 아빠와 생일이 똑같은 12월 3일.

딸이 태어났다. 큰 아이 요셉이처럼 ‘에스더’라는 성경이름을 지어줬다. 최소한 이름처럼만 살면 삐뚤어지지 않고 평범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삼형제 집안에서 자란 아빠에게 딸은 신기한 존재였다. 도대체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혹시라도 커서 늦게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상상이 들기 시작했다. 먼 훗날의 걱정은 현실의 통장 잔고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기용품은 물려 받았지만, 기저귀는 사야했다. 다행히 모유를 먹는 효심을 보여 비싼 분유를 사지 않아도 됐다. 글을 쓰다 새벽에 나와보면 아빠를 향해 방긋 웃는 에스더의 미소에 피곤함은 사라지곤 했다.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

전업블로거의 삶을 결정하면서 원고료로 먹고 살 수 있다고 믿었다. 한국에서는 택도 없는 짓이었다. 유명한 교수나 이름있는 저명인사가 아니고서는 원고를 의뢰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적은 원고료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필요할 때마다 누군가 보내준 택배 상자가 문 앞에 도착했다. 에스더 기저귀, 아기 옷, 정성이 담긴 편지와 현금 등이 왔다.

제주 생활 하면서 오히려 빚이 없었다. 육지에서 생활할 때는 카드 빚이며 할부금이 있었지만, 없으면 없는데로 버티자고 결심하니 통장에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스킬이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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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후원자 명단

누군가 후원을 하고 싶다며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과연 내가 후원을 받아도 되느냐를 고민하다가 글로 보답하자는 마음으로 2011년 9월 처음으로 후원계좌를 열었다. 한 달에 네 명, 다섯 명 등 채 열 명이 되지 않은 후원자들이었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후원자가 많은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한 달 60~70명의 블로그 후원자들이 너무 소중하다. 그들의 자발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글의 수준에 비해 너무 커다란 손을 내밀어준 그들이 있었기에 광고 하나 붙이지 않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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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Daum Life on Awards에서 미디어몽구와 스페셜 토크

상보다 상금에 눈이 멀었다. 상금을 받으면 이 돈으로 아이 기저귀값과 먹을 것이 해결될 수 있으니 상보다 상금 액수가 얼마인지가 늘 궁금했다.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상을 받으면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상금을 받으면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상상하면서 행복해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다. 함부로 글을 쓰면 곧바로 사람들이 알게 되니 개인 블로그의 영역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상을 받는 대부분의 이유는 잘해서가 아니라 1인 미디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못하면 아이엠피터가 아니라 1인미디어들이 욕을 먹는다.

수상경력

2015년 인터넷기자협회 참언론상

제3회 대한민국 블로그어워드 대상 수상

2012년 다음뷰 블로거 대상 수상

2010년,2011년,2012년,2013년,2014년 티스토리 베스트 블로거

PC사랑 선정 2010 베스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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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피터의 놈놈놈’ (책으로 여는 세상) ‘곽노현 버리기’ 공저 (책보세) ‘한국의 보수주의는 왜 이렇게 천박한가’ (티엔엠미디어) 등의 책을 썼다. 결론은 ‘아이엠피터는 책을 쓰면 안 된다’였다. 블로그 형태로 수 년 동안 글을 쓰다 보니 텍스트로만 글을 쓰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누군가 원고를 의뢰해오면 겁이 났다. 대부분 거절을 한다. 인터넷으로 보여주는 글은 자료와 이미지를 통해 내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텍스트만으로 글을 쓰는 것은 필력이 있어야 했다. 당연히 문장력이 약한 나에게는 치부를 드러내는 일과 같았다.

아마 환갑 정도의 나이가 되면 지금보다는 필력이 조금은 나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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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블로거로 글만 쓰다가 2014년부터 ‘팟캐스트’. ‘직썰토론’, ‘인터뷰’,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 ‘국민TV The 아이엠피터’ 프로그램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민언려 시민기자 학교’나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에도 강의를 꾸준하게 하고 있다.  잘나지 않은 얼굴과 말빨로 이곳저곳에 등장하는 이유는 오로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글로만 컨덴츠를 채우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다. 동영상과 카드뉴스 등 다양한 형태가 나와야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인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뭔가 하고 싶어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좌충우돌 실수 투성이다. 사람들도 재미 없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사람을 만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악착같이 자료와 컨덴츠를 모으고 있다.

나중에 인터뷰를 잘하거나 토론을 잘 진행해서 새로운 사실이나 숨겨진 진실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기회가 되면 MB나 박근혜 대통령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 도대체 그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인을 만나 그들의 속내를 꺼낼 수 있는 그날까지 수습기간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 말이지 유권자에게 모든 정보를 알려주는 거야.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가 제공될 때 끔직한 결론이 나올 수 있어 -미드 뉴스룸 중에서

The 아이엠피터의 최종목적지는 어디일까? 정보이다. The 아이엠피터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이유는 한국 정치와 현대사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말했던 공약은 얼마나 이행됐지?’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도대체 어떤 법안일까?’
‘지난 총선에 출마했던 국회의원 후보들의 공약이 뭐였지?’
‘왜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대구 행사에 참석하지?’
‘세월호 특조위의 예산은 정확히 어디에 쓰이고 있지?’
‘입법예고된 법안,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

이 모든 질문에 정보를 줄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글을 잘 쓰고 말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와 데이터로 알려주는 사람은 드물다.

새누리당이나 보수 우익 세력을 꼴통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무슨 선거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언론을 기레기라고 부른다. 그들이 왜 기레기인지 어떻게 편향적인 보도를 하는지 데이터가 별로 없다. 어쩌면 우리도 그들처럼 똑같이 손가락질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와 현대사 자료를 수집하고 다듬는 일이 쉽지는 않다.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과거 7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며 한 걸음씩 걸어왔던 것처럼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정치대백과 사전’을 만들려고 한다. 아마 20년쯤 하면 대한민국 정치인의 90%는 ‘아이엠피터의 위키’에 담겨 있으리라 본다.

조선왕조실록을 왕은 두려워했지만 백성을 읽지 못했다. 누구나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 아이엠피터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목표이다.

‘The 아이엠피터’는 정치블로거 아이엠피터가 정치가 발전된 나라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운영하는 ‘정치미디어’입니다.

The 아이엠피터
e-mail:[email protected]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동로 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