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고령의 김석범 작가는 한국에서 열릴 국제적 학술 포럼인 '재일 디아스포라문학과 글로벌리즘' 행사를 위해 주일 대사관에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했습니다.

1925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김석범 작가 부모님의 고향은 제주도입니다. 어린 시절 제주에서 자란 김 작가의 국적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입니다. 한국 국적이 없어 한국에 올 때마다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던 김 작가는 1988년 노태우 정권 이후 13차례나 한국을 방문했었습니다.

김석범 작가는 제주4.3사건을 문학적인 소재로 한 장편소설 '화산도'로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사히 신문의 '오사라기 지로상'과 '마이니치 문예상'을 받은 인정받는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김 작가는 '간수 박 서방'(1957), '까마귀의 죽음'(1957), '관덕정'(1961), '만덕유령기담'(1970), '만월'(2001) 등 제주 4.3사건을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아 인간의 갈등과 삶을 표현했습니다. 장편소설 '화산도'는 주인공 이방근의 눈을 통해 독립운동과 친일파, 좌익과 우익 등 여러 가지 삶을 보여주면서,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자주 다니지 못하는 고향 땅이지만 제주도에 가면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밑, 서귀포 정방폭포 밑 깊은 물 속, 여기저기에 아직도 떠도는 원혼(寃魂)의 환청(幻聽)에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까마귀의 죽음’ 이래 ‘화산도’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4․3을 문학적 테마로 다뤄온 나는 지금, 망각이 기억으로 재생하는 아주 극적인 시대의 흐름을 눈부시게 바라본다.”(동아일보 2003년 4월 12일자)


재일작가 김석범의 한국 입국 거부에 대해 주일 한국대사관은 '김씨가 한국에서 한 반국가적 발언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문제를 삼은 반국가적 발언은 제1회 4.3평화상 수상식에서 그가 했던 수상 소감입니다.







 

“과연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승만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었겠느냐. 여기서부터 역사의 왜곡, 거짓이 드러났으며 이에 맞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전국적인 반대투쟁이 일었고 그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4ㆍ3사건이다.” (제1회 4.3평화상 수장자 김석범 작가의 수상소감 중에서)


당시 4.3평화상 수상식 이후 모 국회의원이 문제를 제기했고, 보수단체가 기자회견까지 벌였습니다. 급기야 행정자치부는 행정감사까지 했지만, 별다른 지적사항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4월에는 입국이 허용됐지만 10월에는 불허된 김석범 작가의 입국 거부는 국정교과서 강행 이후 벌어지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에 대한 정책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교안 총리는 일본 거주민들의 생명이 위협받을 경우 일본 정부와 협의해 자위대 입국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일본인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자위대의 입국까지 허용하겠다면서, 독재자를 비판한 재일동포 작가의 입국은 거부한 한국 정부의 모습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과연 무엇을 위해서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세계 문학가들이 대한민국을 가리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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