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박정희가 사망한 10.26 사건이 벌어진 날입니다. 국민이 박정희의 사망을 알게 된 날은 10월 26일이 아니라 10월 27일이었습니다. 박정희가 죽은 날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10월 26일을 박정희가 죽은 날로 기억하지만, 이날 벌어진 사건의 현장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박정희가 사망한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로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과 같습니다. 박정희가 사망했을 때 김재규가 사용했던 총은 발터PPK이고, 히틀러가 자살했던 총도 발터 PPK입니다.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의 모티브가 됐던 암살조직 백의사 총사령관 염동진의 아지트가 있었던 곳이 궁정동이었고, 박정희가 사망한 장소도 궁정동 안가였습니다.

박정희와 함께 5.16쿠데타를 일으켰던 차지철은 권력을 휘두르며 박정희에게 충성을 다했던 인물이었지만, 김재규의 쏜 총에 박정희가 쓰러지자 화장실로 도망쳤던 인물입니다. 경호실장으로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궁정동 안가 만찬에서 박정희와 함께 있었던 미모의 여대생 신재순은 실제로는 미혼이 아니라 결혼해서 딸까지 있는 이혼녀였습니다. 단순하게 만찬을 즐기면서 음악을 듣고 연회를 즐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은 박정희의 사망소식을 김성진 문공부장관의 공식 발표가 있기 3시간 전인 10월 26일 오후 3시 (미국시각) '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박정희의 사망을 쿠데타로 봤던 것입니다. 미국의 이런 모습은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이 개인적으로 벌어진 우발 사건이 아닌,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의혹을 품게 했습니다.

박정희의 사망 배경을 놓고 미국이 배후냐, 김재규의 단독범행이냐는 다양한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박정희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밖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각하 말씀은 "이제부터 사태가 (부마항쟁)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명령을 하겠다'하니까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이라고 하는 것도 희생을 시켰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100,200만 명 희생한다고 문제될 거 있느냐'고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들으면 소름이 끼칠 그럴 이야깁니다. (김재규 법정 증언 녹취록 중)


 

어제 박정희 동상에 과일을 놓고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죽었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면 마냥 바라만 보기가 불편합니다. 김재규의 박정희 저격은 무어라 해도 유신 시대를 종식한 것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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