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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을 상품으로 파는 기자들

2020년 11월 4일

누군가의 죽음을 상품으로 파는 기자들

개그우먼 박지선씨가 숨졌습니다. 언론사마다 앞다퉈 박씨 관련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무려 50여 건이 넘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조선일보는 ‘단독’이라며 박씨의 유서를 일부 공개했고, 별다른 취재 없이 지인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추모의 글을 짜깁기해 수십 건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자살보도권고기준 3.0
-자살을 예방하려면 자살 사건은 되도록이면 보도하지 않습니다.: 자살 사건을 보도하지 않기로 한 나라들에서 실제로 자살이 감소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가급적 자살 사건은 보도하지 않는 것이 자살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자살 사건을 주요 기사로 다루지 않습니다. : 사람의 생명보다 더 큰 보도의 가치는 없습니다. 자살이 부각된 보도는 자살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방송 보도나 신문 지면 등에서 자살 사건을 우선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특히 유명인의 자살 보도는 파급력이 크므로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 유명인의 자살이나 자살시도를 다루는 보도는 모방자살을 초래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합니다. :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의 미화를 방지하려면 유서와 관련된 사항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습니다.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에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이 나옵니다. 기자와 언론사가 자살 관련 사건을 보도할 때 지켜야 할 기준입니다.

조선일보는 박씨의 사망 소식을 상세하게 중점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유서도 단독을 붙여 공개했습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불이익을 당하거나 법적으로 처벌받지는 않았습니다.

죽음으로 클릭팔이… 변하지 않는 언론

▲스포츠조선 박아람 기자가 보도한 유튜브채널 가세연 비판 기사 ⓒ조선일보 캡처

3년 전에도 한국 언론의 자살보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관련기사: 기자가 쓴 자살 사건 기사로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 당시 지적했던 보도 행태가 2020년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론은 왜 변하지 않을까요? 돈 때문입니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과 비슷한 수십 건의  보도 등 기사 어뷰징을 통해 클릭을 유도해 광고 등을  통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기자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포츠조선 박아람 기자는 유튜브 채널 가세연의 이런 행태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박 기자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추모글을 소재로 3건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전형적인 어뷰징 기사입니다.

언론사와 기자들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빨리 팔아 치워야 하는 미끼 상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자살기사 보도 증가할 경우, 자살 검색도 증가

▲ 1974년 필립스는  1948년부터 1968년까지 뉴욕 타임스에 게재된 자살기사를 분석한 결과, 자살보도량과 자살 뉴스의 1면보도 여부가 실제 자살 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를 발표했다.ⓒ신문과방송 2011년 7월 자료

언론을 통해 자살기사의 보도가 증가하면, 자살률도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특히 유명 연예인의 자살 보도가 나오면 자살 사망률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2003년 홍코 영화배우 장국영이 자살로 사망한 직후 자살 위험도가 28%나 증가했고,(2001년과 2002년 두 해 같은 기간과 비교) 한국 영화배우 이은주씨의 경우에도 22% 증가했습니다.

자살기사 보도량이 증가할 경우 자살 검색량도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신문의 자살보도가 자살 관련 인식에 미치는 영향’ (김은이, 송민호, 김용준) 연구 보고서를 보면 자살기사가 나오면 1주일 내로 자살방법과 자살이유 등의 검색량도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응답자 1,500명을 대상으로 자살 관련 미디어 인식을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63.6%가 ‘자살 관련 기사가 자살시도를 부추긴다’고 인식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자살보도 권고기준안’을 만들어 놨지만, 어겼다고 불이익은 없습니다. 자살보도가 또 다른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다면, 자살보도를 규제하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상품으로 팔면서 돈은 벌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언론사와 기자들, 언제쯤이면 그들이 죽음의 무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사를 쓸 수 있을까요? 과연 그날이 오기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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