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페이스북에 "백선엽 장군을 위한 자리는 서울 현충원에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원 지사는 백선엽 장군이 사망해도 서울 현충원에 안장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하며  "백 장군님은 6.25전쟁 영웅으로 자유대한민국을 구한 분입니다. ‘6.25의 이순신’이라고 평가해도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백선엽을 가리켜 '한국 전쟁의 영웅'이니 당연히 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친일파'이니 안장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누구의 주장이 맞을까요?

'간도특설대', 가장 악랄했던 독립군 토벌부대 

▲백선엽의 '군과 나' 일본어판 내용 중 간도특설대 번역 부분
▲백선엽의 '군과 나' 일본어판 내용 중 간도특설대 번역 부분


친일파를 분류할 때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과 적극적으로 친일 했던 사람을 나눠서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백선엽은 어느 쪽이었을까요?

백선엽의 '군과 나'라는 회고록을 보면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던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 중 토벌 내용은 일본어판에만 있고, 한국어판에는 없습니다. 마치 나는 일본군처럼 불령선인(조선인)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 (백선엽 군과 나)

백선엽은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들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독립군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간도특설대가 일제가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부대라는 사실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간도특설대는 일제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그 어떤 부대보다 악랄하게 토벌 작전을 벌였습니다. 백선엽은 당시의 경험을 살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백선엽 군과 나)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는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니 비판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백선엽은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군인의 사명'이라며 '그런 기분을 가지고 토벌에 임했다'고 기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일제가 주장하는 '대화혼'을 통해 천황의 뜻을 받드는 것을 뜻합니다. 일제의 대동아공영론으로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간도특설대 군가에도 나옵니다.
<간도특설대 부대가>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을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대화혼(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

친일인명사전은 일본군에 복무했던 사병은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고 소좌 이상만 등재했습니다. 그러나 간도특설대는 사병을 포함해 전원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했습니다. 그만큼 간도특설대가 독립군 토벌에 가장 적극적이면서 악랄했기 때문입니다.

백선엽은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을 고백(일본어판에서)했어도 처벌은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전쟁 영웅'으로 미화되고 있습니다.

백선엽은 어떻게 전쟁 영웅이 됐는가?

▲백선엽(좌)과 김종오 장군(우). 모두가 한국전쟁에서 북한군과 싸웠다. ⓒ자료사진
▲백선엽(좌)과 김종오 장군(우). 모두가 한국전쟁에서 북한군과 싸웠다. ⓒ자료사진


백선엽의 '다부동 전투'도 중요한 전투였지만, 전쟁 초기 김종오 장군이 이끄는 6사단이 춘천-홍천 전투가 아니었다면 UN군이 오기도 전에 남한은 궤멸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종오 장군의 6사단은 인민군의 남진을 저지했을 뿐 아니라 낙동강 영천 전투에서도 인민군 8사단에 막대한 타격을 줬습니다.

김일성이 "남조선의 사단 중 제대로 된 사단은 6사단밖에 없으니 그걸 깨부수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김종오 장군의 6사단은 한국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왜 김종오 장군보다 백선엽이 더 한국전쟁 영웅처럼 나올까요? 그 이유는 백선엽이 영어를 잘하고 미군과의 합동 전투 등으로 함께 한 '전우'라는 점에서 신뢰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미군도 인정한 군인이라는 타이틀은 '영웅 만들기'에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과거 군 내부에 만연한 친미 군인의 빠른 승진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친일 전력과 함께 한국전쟁도 또다시 살펴봐야 

▲백선엽의 회고록 '군과 나' ⓒ자료사진
▲백선엽의 회고록 '군과 나' ⓒ자료사진


2017년 백선엽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 원로들이 대거 반대하면서 무산됐습니다.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 왜 백선엽의 명예원수 추대를 반대했을까요? 친일 전력도 있지만, 그가 한국전쟁에서 쌓은 전투만으로 원수 자격이 있느냐는 반발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공과를 같이 살펴봐야 한다고 합니다. 백선엽의 공은 한국전쟁이고 과는 친일전력입니다.

백선엽의 한국전쟁 전투를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백선엽 혼자서만 인민군을 격퇴한 것이 아니기에 왜구와 싸운 이순신 장군과 동격으로 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백선엽은 공식적으로 간도특설대 복무를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보다 더 시급한 것은 죽기 전에 독립군 토벌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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