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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은 왜란 ‘도자기 전쟁’

2019년 9월 26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왜란 ‘도자기 전쟁’

임진왜란을 가리켜 ‘도자기 전쟁’이라 불릴 만큼 일본은 도자기에 집착했고, 전쟁 중에 조선인 도공 확보를 우선 과제로 삼기도 했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지난 8월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의 흔적을 취재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 사가현 <규슈 도자박물관>은 아리타 도자기를 연대별로 소개하고 있는 규슈 최대 도자기 전문 미술관입니다. 일본 도자기의 시초가 된 지역인 까닭에 이곳에 가면 일본 도자기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도자기 기술이 조선에서 넘어왔다는 사실을 표기하지 않은 박물관 

▲규슈도자박물관에 있는 일본 도자기 관련 연표와 지도. 조선인 도공이 일본에 넘어 온 사실이나 자기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은 표기하지 않았다.

<규슈도자박물관>에는 일본 도자기가 서양으로 수출했던 지도와 연표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는 1602년부터 표기가 돼 있었습니다. 지도에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 도공이 일본으로 왔다는 사실이나,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도자기가 넘어갔던 사실들은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일본이 고의적으로 기록을 뺐냐’라는 질문에 “확실하지 않지만, 일본이 그동안 한 행동 (역사왜곡 등)으로 봐서는 일부러 뺏다고 보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도자기는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에서 많은 도공들을 데려와서 비약적으로 발전을 합니다. 일본은 1650년경부터 동남아 지역을 통해서 네덜란드까지 도자기를 수출합니다. 일본은 서양에 도자기를 수출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데, 나중에 메이지 유신의 바탕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도자기가 일본에 미친 영향이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도자기는 원료가 되는 흙도 좋아야 하고, 불을 다루거나 자기를 빚는 도공의 기술이 합쳐져야 하는 지금의 ‘반도체’와 같은 첨단 기술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자기의 혁명을 가져다준 도석을 발견한 조선인 도공 

▲이삼평이 발견한 이즈미야마 자석장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도석이 발견된 곳으로 안내문에는 조선인 이삼평이 발견했다고 표기돼 있다. ⓒ김동우

일본 아리타 지역을 일본 자기의 발상지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1616년 조선인 도공 이삼평이 이즈미야마 산에서 도석(도자기의 원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삼평이 우리나라말로 고령토라고 불리는 백토로 자기를 만들면서 일본에서 만든 도자기도 조선의 백자와 같은 색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첨단 소재를 발견한 셈입니다.

조선인 도공 이삼평은 백토광산을 발견한  뒤 근처 덴구타니에 산비탈을 이용해 큰 가마를 짓고 백자를 만듭니다. 여기서 만든 도자기는 ‘이마리 도기’라는 별칭으로 일본 전역에 퍼집니다.

이삼평이 발견한 <이즈미야마 자석장>은 “400년 동안 하나의 산을 도자기로 바꾸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도자기의 혁명을 가져다준 놀라운 발견으로 1980년 일본 국가사적으로 지정됐습니다.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일본

▲백토광산 근처에 조성된 도공 마을에서 세운 석장신사. 조선인 복장을 한 이삼평 상이 세워져 있다.ⓒ김동우

일본은 이삼평을 도자기의 시조라는 의미에서 도조(陶祖)로 받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삼평은 일본 영주로부터 가네가에라는 성을 받을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도공들의 수장이었습니다.

350년이 넘는 <도산신사>에는 천황과 나베시마 번주,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인 도공이 일본에서는 천황과 영주에 버금갈 정도로 추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삼평의 백토광산 발견과 아리타 도자기는 위대한 업적인 동시에 일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조선이 도자기를 수출했다면…

▲규슈도자박물관에 전시된 자기 ⓒ김동우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칙령 1호가 조선인 도공의 확보입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인 도공 등을 통해 강제로 조선의 첨단 기술을 빼앗은 셈입니다. 당시 조선인 도공들은 일본 영주들의 철저한 관리를 받을 만큼 도자기는 비밀스럽고 중요한 기술이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겠지만, 만약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도공들이 잡혀가지 않았으면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선인 도공이 없었다면, 일본의 도자기 산업도 일본의 근대화의 시초가 됐던 메이지 유신에 영향을 미쳤던 부도 축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없었다면, 동아시아 지역의 힘의 균형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라며 “조선이 도자기들을 유럽에 수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삼평의 흔적을 찾는 일본 취재를 하는 내내 반도체 소재 분쟁이나 무역 보복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왜란이 끝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 일본 첨단 기술의 혁명을 가져다준 소재를 발견한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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