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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에 감춰진 역사

2019년 7월 9일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에 감춰진 역사

‘백범일지’에는 ‘뭉우리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김구 선생이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을 때 일제 순사는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며 고문을 하면서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다짐을 합니다.

‘뭉우리돌’은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가를 의미합니다. 또한, 전세계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기록하는 김동우 작가의 책과 사진전 ‘뭉우리돌을 찾아서’ 프로젝트의 배경입니다.

인도에서 찾은 광복군의 흔적 

김동우 작가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일하다 퇴사하고 2012년에 세계일주를 합니다. 이후 여행 관련 책을 내는 등 여행작가로 활동합니다.

▲광복군이 영국군과 함께 훈련했던 뉴델리 레드 포트. 이곳에 파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속 인면전구공작대 9명은 미얀마 전선에 투입돼 전과를 올리는 등의 활약을 이어간다. 임시정부는 이들의 활동을 통해 참전국 지위를 얻고 싶어 했다. 그 길이 전후 있을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동우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인도 여행 중에 뉴델리 레드 포트가 우리 독립운동사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943년 임시정부는 영국군 총사령부의 요청을 받고 일본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9명의 광복군을 인도로 파견합니다. ‘인면전구공작대’는 주인도 영국군사령부가 있던 레드 포트에 주둔합니다. 미얀마 전선에 투입된 공작대는 일본군 포로 심문, 대일선전, 암호해독, 통신 감청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전과를 올립니다.

‘레드 포트’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독립운동이 중국 상해에 국한되지 않고, 연합군 참전국으로서의 지위를 얻기 위해 파견됐던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곳입니다.

“교과서에서도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이런 역사가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역사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더욱 충격이 컸던 거 같습니다. 우리 독립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훈련하고 같이 노력했던 이런 현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거기서부터 좀 이 작업을 내가 해 봐야 하겠다 좀 생각을 하기도 했죠” (김동우 작가)

인도 레드 포트를 계기로 김동우 작가는 인도-중국-멕시코-쿠바-미국-네덜란드-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총 9개국 100여 곳을 다니며 독립운동 유적지를 사진으로 담습니다. 여기에 걸린 시간만 무려 1년 8개월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에 감춰진 역사

▲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단지동맹 기념비. ‘1909년 2월 7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결사 동지 김기용·백규삼·황병길·조응순·강순기·강창두·정원주·박봉석·유치홍·김백춘·김천화 등 12인은 이곳 크라스키노(연추 하리) 마을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하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놓고 각기 왼손 무명지를 잘라 생동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국 만세를 삼창하다’고 새겨있다. ⓒ김동우

안중근 의사가 왼손 무명지를 끊고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혈서를 쓴 사실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단지는 안중근 의사 혼자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08년 7월 동의회 의병부대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에 참가했던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로 돌아옵니다.

안 의사는 국내진공작전이 뚜렷한 전과를 거두지 못해 독립운동이 침체되자, 김기룡(金起龍)·강순기(姜順琦)·정원주(鄭元柱)·박봉석(朴鳳錫)·유치홍(劉致弘)·김백춘(金伯春)·백규삼(白奎三)·황병길(黃丙吉)·조순응(趙應順)·김천화(金千華; 갈화천)·강창두(姜昌斗) 등 총 12명과 모여 단지를 통해 다시금 독립운동을 결심합니다.

단지동맹(斷指同盟)으로 알려진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결성 이후 몇 달 뒤에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 가서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에 총탄을 발사합니다.

안중근 의사와 함께 단지를 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명단만으로 찾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명단이 일제의 손에 들어가면 추격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대부분 가명을 사용했던 까닭입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손이 찍힌 그림과 사진은 많이 봤지만, 그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수준입니다.

일본이 아닌 우리가 새겨들을 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계봉우 선생의 사진을 바라보는 아들 계학림씨. 계봉우 선생은 북간도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교육 내용이 반일이라는 이유로 서울로 압송해 옥고를 치렀다. 3.1 운동 뒤에 다시 북간도로 간 계봉우 선생은 연해주 지역 한인 이주 개척사 등 항일독립운동의 중요한 내용이 담긴 ‘새바람’을 출간했다.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간 뒤에도 ‘이두집해(吏讀集解)’, ‘조선문법’, ‘조선말의 되어진 법’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김동우

김동우 작가는 “책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배우는 역사가 잊히지 않는다”라며 “현장에 가보면 정말 뭉클하고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찬란하고 치열했구나 이거를 느끼는 그 자체가 사실  새로운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합니다.

김 작가는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하는 이유로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작업이기도 하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소중한 역사가 타지에서 점점 사라져 가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제대로 정리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사진은 단순히 여행지의 모습이 아닙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투쟁의 역사인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입니다.

나라를 잃고 해외를 떠돌면서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후손들을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기억입니다.

▲’뭉우리돌을 찾아서’ 전시회를 방문한 이낙연 총리가 방명록에 남긴 글 ⓒ김동우

우리가 일본한테 그런 얘기하잖아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사실 그 말은 일본한테 먼저 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한테 먼저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동우 작가)

전 세계를 다니며 독립운동 유적지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는 김동우 작가는 신혼집을 경비로 사용해서 지금도 처가살이를 합니다.

그는 아직도 독립운동유적지를 다 담지 못했다며, 다시 기나긴 여행을 준비합니다. 그를 위한 작은 펀딩이 우리의 역사를 후손에게 남겨줄 기록이 됩니다.

‘뭉우리돌을 찾아서’ 프로젝트 펀딩하기:  https://www.wadiz.kr/web/wcomingsoon/rwd/38873
유튜브에서 바로보기: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에 감춰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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