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에순양은 학교가 끝난 뒤에 곧장 집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빌라 앞마당에 가방을 팽개치고 친구들과 놀기 바쁩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누가 언덕길을 빨리 내려가는지 시합도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빌라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치거나 물총 싸움을 합니다. 이마저도 재미가 없어지면, 다시 학교에 가서 모래 놀이를 합니다.

사는 곳도 학교도 반도 똑같은 아이들과 몇 년을 함께 지냈는데도 아직 놀 것이 남았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 다닙니다.  에순양은 날이 깜깜해져야 집에 가는 시간인 줄 압니다.

해가 길어지면서 들어오지 않는 에순양을 잡기 위해서는 엄마가 출동해야 합니다. 엄마 손에 잡힌 채로 뿌루퉁한 얼굴로 집에 들어온 에순양의 첫마디는 "배고파"입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아빠가 쓴 '헌법을 읽는 어린이' 책을 찾는 에순양. 그러나 막상 책을 찾고는 읽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브 관련 책만 읽는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아빠가 쓴 '헌법을 읽는 어린이' 책을 찾는 에순양. 그러나 막상 책을 찾고는 읽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브 관련 책만 읽는다.


밥을 먹고 땀에 범벅인 몸을 씻은 에순양이 공부를 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한창 빠져 있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슬라임(액체괴물:액괴)을 갖고 놉니다.

에순양은 대부분의 용돈을 슬라임 구입에 쓸 정도로 푹 빠져 있습니다. 물컹거리는 덩어리가 뭐가 좋은지 몇 시간을 조물딱 거립니다.

슬라임을 갖고 노니, 책상이고 의자고 온통 슬라임이 묻어 지저분합니다. 청소하라고 잔소리를 해야 겨우 청소하는 시늉, 그마저 엄마의 도움을 받아 정리합니다.

도서관에 가서도 아빠가 쓴 책은 표지만 확인하고 유튜브 관련 책만 읽습니다. (요돌군과 에순양을 위해 책을 썼던 목적이 사라지는 가슴 아픈 순간이다.) 온통 슬라임과 유튜브에 빠져 있는 에순양입니다.

▲초등학교 때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요돌군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트럼본을 분다. 집에 악기가 없어 빌려온 클라리넷으로 연습하는 요돌군.
▲초등학교 때 클라리넷과 베이스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요돌군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트럼본을 분다. 집에 악기가 없어 빌려온 클라리넷으로 연습하는 요돌군.


집안 사정상 야구를 그만둔 요돌군은 관악부에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악기를 연주했으니  하는 마음에 허락했지만, 취미로 보기에는 도가 지나칩니다.

학교 수업 전은 물론이고  끝나고도 모자라, 주말에도 관악부 연습이 있으면 꼭 나갑니다. 집도 멀어서 한 번쯤 빠질 수도 있지만, 악착같이 갑니다.

관악부 활동이 무슨 큰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통학 거리가 너무 깁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탓에 오전 7시 차를 타고 나가야 합니다. 관악부 연습과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저녁 9시가 넘습니다.

야구부 때문에 시내 중학교로 갔으니 집 근처로 전학 가자고 해도 싫답니다.  지금 다니는 중학교가 명문이라 꼭 다녀야 한답니다.

그냥 취미로 했으면 좋겠지만, 관악부를 위해 학교에 다니는지 모를 정도로 열심입니다. 관악부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선배들과 함께 공부도 하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해봅니다.

통학길 버스 안에서나 집에서도 유튜브로 보는 영상은 대부분 음악이나 악기 연주에 관한 콘텐츠입니다. 관악부 공연 때 하는 곡은 얼마나 많이 듣는지 옆에 있는 가족들이 모두 외울 지경입니다.

요사이 요돌군의 뇌구조를 보면 관악부와 악기, 음악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식당에서 자는 에순양의 모습을 찍는 요돌군. 놀리는 요돌군 덕분에 에순양은 삐쳤다.
▲식당에서 자는 에순양의 모습을 찍는 요돌군. 놀리는 요돌군 덕분에 에순양은 삐쳤다.


'현실 남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매가 우애가 좋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한다는 얘깁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설마 했습니다. 그러나 요새 에순양과 요돌군을 보면 딱 '현실남매'입니다.

요돌군은 에순양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잔소릴 합니다. 에순양은 컸다고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반박합니다. 누구 한 명이 눈물을 흘려야 끝이 납니다.

5살 차이에 덩치 차이가 있으니 몸싸움은 없지만, 둘 사이의 견제와 암투는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옆에서 보는 아빠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 순간, 편파 판정이라 이의가 들어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아이들 키우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마 아이들이 커나갈수록 이런 말을 자주 할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키워 봐야 본인들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던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왜 아버지가 그토록 자식들 주변을 기웃거렸는지, 형제끼리 싸울 때마다 속상했는지 이제는 조금씩 느낍니다. 아이를 키워봐야 철이 드나 봅니다.

▲ 2019년 5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후원계좌와 CMS로 후원해주신 분들. 펀드는 약정서에 서명하고 입금하신 분들입니다. 미입금자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 2019년 5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후원계좌와 CMS로 후원해주신 분들. 펀드는 약정서에 서명하고 입금하신 분들입니다. 미입금자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주저리주저리 넋두리처럼 글을 쓰는 이유는 후원자분들과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블로거도 기자도 유튜버도 아닌 그냥 '아이엠피터'만의 독특한 소통 방식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이엠피터TV' 후원자 분들 중에 에순양과 요돌군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 간혹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오늘 글은 근황 토크인 셈입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에 취재 사무실을 얻어 놓고 제주를 오가는 탓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니 아빠보다 친구들이 먼저이고, 가족과 함께 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제주를 떠나 취재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듭니다. 언제나 아빠만 찾는 아이들이라 생각했는데,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경제 사정상 한 번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사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후원자분들이 있어서 우리 가족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아빠의 수입이 후원자 분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그나마 말썽도 덜 피웁니다.

5월은 글도 영상도 죽을 쒔다고 표현할 정도로 침체기였습니다. 쉽게 글이 써지지 않으니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취재한 영상도 몇 번 엎었습니다. 6월이 시작됐는데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오늘 글을 쓰면서 마음을 잡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어 달리기를 하는 에순양. 시골 초등학교라서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모두 이어달리기에 참여한다.
▲ 이어 달리기를 하는 에순양. 시골 초등학교라서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모두 이어달리기에 참여한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달리기만 했다면 지고 오는 에순양이 올해는 아주 잘 달렸습니다. 키가 크면서 체력이 뒷받침해주니 승부욕도 생겼는지 이를 악 물고 뛰었습니다.

혼자서 글을 쓰고 취재를 하다 보면 외롭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트랙 위에서 달리는 사람은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이 맞습니다.

다만, 옆에서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힘이 나듯이 아이엠피터에게는 후원자분들이 보내주시는 정성이 쓰러지지 말라는 응원 같습니다.

힘들 때마다 버팀목처럼 든든하게 지켜 주는 분들이 있어 또다시 힘을 내봅니다. 5월 한 달 동안 보내주신 정성과 후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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