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입니다. 노 대통령에 관한 글을 10년 넘게 써오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했던 주제가 언론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언론'입니다. 노 대통령의 말을 검증하다 보면 언론의 왜곡보도가 마치 1 1처럼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야만의 언론'이라 부를 만큼 철저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괴롭혔던 존재가 바로 언론이었습니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의 악연이었습니다.

<뉴스타파>가 21일 공개한 노무현 대통령이 쓴 친필메모 중에는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2007년 3월 작성) 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노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가 언론과 어떤 관계였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노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악연

▲ 1989년 4월 발간된 <주간조선>의 표지사진 (왼쪽) 2009년 5월 발간된 <주간조선>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는 듯한 컬러이지만, 내용은 노 대통령 망신주기였다.
▲ 1989년 4월 발간된 <주간조선>의 표지사진 (왼쪽) 2009년 5월 발간된 <주간조선>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추모하는 듯한 컬러이지만, 내용은 노 대통령 망신주기였다.


노 대통령을 가장 심하게 공격했던 언론은 <조선일보>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대상은 <주간조선>이었습니다.

그 악연은 1989년 노무현 의원을 찾아온 <조선일보> 배달원과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신문배달원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채 열악한 상황 속에서 신문을 배달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를 돕던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조선일보> 배달원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함께 싸웠습니다.
"노 대통령이 그 일에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배달원들에게 변호사도 소개해 주고 그러면서 결국 지국을 상대로 소송까지 들어갔어요. 한 3년 끌었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노 의원 스타일이, 줄곧 그 일에 간여했고 결국 배달원 쪽이 승소했죠. 배달원들의 생활조건이 달라졌고요. 하지만 노 의원은 큰 적을 만든 셈이었습니다. 3년을 끄는 동안 신문사 쪽에서 노 의원을 곱게 보았을 리 없고요. 또 노 의원 역시 그때 메이저 신문과 처음 공식적으로 대립하게 됐죠. 그때 아마 메이저 신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깊이 하게 됐을 겁니다." (이호철 전 비서관 증언)

▲<조선일보>는 노무현 의원을 개인 요트를 소유한 부산요트클럽 회장으로 상당한 재산가라고 보도했다. 명백한 왜곡보도였다.
▲<조선일보>는 노무현 의원을 개인 요트를 소유한 부산요트클럽 회장으로 상당한 재산가라고 보도했다. 명백한 왜곡보도였다.


<조선일보> 배달원들을 도왔던 대가는 실로 혹독했습니다. 1991년 9월 노무현 의원은 민주당의 초대 대변인을 맡았습니다. 1991년 9월 17일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 그를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몰았습니다.
"원내 진출 이후 노사분규 현장을 자주 찾아다니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의원직 사퇴서 제출 촌극을 빚는 등 지나치게 인기를 의식한다는 지적도. 한때 부산요트협회 회장으로 개인 요트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재산가로 알려져 있다." (1991년 9월 17일 조선일보) 

노무현 의원이 "요트를 취미로 탄 적은 있지만 200~300만 원짜리 소형 스포츠용이었고 부산요트협회장은 맡은 적이 없다"는 해명자료를 내놨지만, <조선일보>는 오히려 <주간조선>에 '밀착취재 : 통합 야당 대변인 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라는 기사를 실으며 공격의 수위를 더 높였습니다.

▲<조선일보>에 실린 <주간조선> 광고. '노무현 의원 상당한 재산가'라고 보도했던 <주간조선>은 노무현 의원과의 소송에서 패소한다.
▲<조선일보>에 실린 <주간조선> 광고. '노무현 의원 상당한 재산가'라고 보도했던 <주간조선>은 노무현 의원과의 소송에서 패소한다.


노무현 의원은 해당 기사는 허위·왜곡보도라며 그해 11월 12일 조선일보사, 주간조선 편집인·해당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과 사과광고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주간조선>은 1심에서 패소한 후 노 의원에게 화해를 제의해 소송이 취하됐습니다. 하지만 <주간조선>은 노무현 의원이 먼저 화해를 요청했다며 끝까지 왜곡보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공격을 계속합니다. '노무현 아방궁' 논란도 2007년 9월 발간된 <주간조선> "봉하마을 '노무현 타운' 6배로 커졌다"란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시작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무렵 발간된 <주간조선> 표지는 회색톤으로 타이틀은 '우리는 노무현을 또 만나게 될까?'였습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 추모 기사처럼 보이지만, 실제 기사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이 증거 인멸을 했다는 취지의 악의적 보도였습니다.

<주간조선>과의 소송으로 시작된 악연은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했던 시기에도 이어져 그를 괴롭힌 셈입니다.

진보와 보수언론 모두에게 공격받은 '기자실 통폐합' 

▲ 2007년 참여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룸 시스템으로 바꾸자 당시 언론은 언론을 탄압한다는 식의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 ⓒ문화일보 화면 캡처
▲ 2007년 참여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룸 시스템으로 바꾸자 당시 언론은 언론을 탄압한다는 식의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 ⓒ문화일보 화면 캡처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이 완전히 등을 돌린 계기는 '기자실 통폐합'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처음부터 기자실 통폐합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대담이나 인터뷰, 기자회견, 생방송 토론회 출연 등을 통해 활발하게 그 관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기존의 정치권력과 언론이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않았기에 고쳐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의 갈등이 빚어졌고, 불신은 깊어졌습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일명 '기자실 통폐합'을 도입합니다. 굳이 임기 말에 언론이 반발하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다음 정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며 단행합니다.

당시 진보와 보수 언론 모두가 '기자실 통폐합'을 반대하며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됐다며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스템을 만들면 언론이 정상화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언론 권력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기자들의 엘리트 의식과 유대감이 이 정도로 끈끈한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출입기자단의 폐쇄성은 2019년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상파와 조중동, 주요 언론사들이 가입된 출입기자단은 아예 1인 언론사는 넘볼 수도 없을 정도로 굳건합니다.

일부 기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향한 비판은 수용하지 못하는 '선민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기자 집단을 향해 노무현 대통령이 홀로 맞섰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생은 정책에서 나오고 정책은 정치에서 나옵니다. 정치는 여론을 따르고 여론은 언론이 주도합니다. 언론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을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언론이 먼저 선진언론이 되어야 합니다.”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시절 언론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론의 왜곡보도가 주는 폐해와 언론의 수준이 갖는 의미를 아는 국민이 많아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하는 언론의 중요성을 그가 떠나면서 알게 된 것입니다.

언론의 감옥 속에서 생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한 달 전에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 당시 취재진의 모습을 찍은 블로거의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한 달 전에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올린 글과 당시 취재진의 모습을 찍은 블로거의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기 한 달 전인 2009년 4월 21일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에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저의 집은 감옥"이라며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키고 있어 집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실제로 기자들의 취재 모습을 찍은 블로그에는 봉하마을 주변 산에서 망원렌즈를 거치하고 소위 '뻗치기'를 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는 기자들의 주장도 있지만, 과연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이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기자들을 향해 비난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한다고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MB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2009년처럼 기자들이 뻗치기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별로 의미 없는 취재이고 그저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요새 국회나 외부에 취재를 하러 나가면 MB-박근혜 정권 때와 달리 많은 언론사들이 빠짐없이 취재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보수 정권에서는 받아쓰기에만 열중했던 언론들이 꼭 진보 대통령이 집권하면 왜이리 열정적으로 취재를 하는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는 방송 3사 모두 권력형 비리 사건이라며 검찰 수사가 정당하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서거 이후 정치성 보복 수사라고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검찰 발표를 받아쓰기만 했던 언론이 한순간에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도 언론의 카메라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자의 펜과 카메라가 끝까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보도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직접 작성한 친필메모 중에는 유독 언론과 관련된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대통령 이후, 책임 없는 언론과의 투쟁을 계속할 것'이란 대목은, 퇴임 후 언론과 대결을 미리 예견한 것처럼 보여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과연 언론은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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