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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 대못질(?)의 주역 ‘양비’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

2019년 2월 25일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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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실 대못질(?)의 주역 ‘양비’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

‘문의 남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비’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비서관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탓에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양정철 전 비서관을 ‘양비’라고 부릅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습니다. 2012년19대 총선과 2017년 대선을 통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7년 대선 이후 양비는 ‘잊혀질 권리’를 말하고는 돌연 문재인 대통령 곁을 떠났습니다.

그가 떠났지만, 청와대나 정부 인사가 바뀔 때마다 ‘양비 소환설’은 매번 끊이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문재인 정권에서 공식 직책을 받거나 임명된 적은 없습니다.

지난 2월 10일 언론은 ‘친문이 돌아온다’라며 양비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도했습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 직을 제안받았다는 추측성 기사입니다.

도대체 양비가 누구길래 문재인 정권에서 자꾸 거론될까요?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인물을 평가해 보겠습니다.

영화 모비딕의 실제 주인공 윤석양 이병, 그의 뒤에 양정철이 있었다. 

▲1990년 10월 5일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사찰 폭로 기자회견 모습과 보안사의 사찰 보고서와 플로피 디스크 ⓒ한겨레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다룬 영화 모비딕의 실제 주인공은 윤석양 이병입니다.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폭로한 과정 속에 있었던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양정철 전 비서관입니다.

1990년 9월 24일 ‘언론노보’ 기자로 일하던 양정철은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외대 학보사 1년 후배였던 윤석양 이병이었습니다.

당시 윤 이병은 보안사에 근무하다가 발견한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 정치인과 민간인에 대한 보안사 사찰 기록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와 서류를 가지고 탈영해 쫓기고 있었습니다.

양정철과 만난 윤 이병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자료를 들고 나왔다. 도저히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세상에 알리고 싶다. 이 내용이 폭로되면 군사독재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다. 형에게 맡길 테니 세상에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학보사 후배였지만 윤씨의 엄청난 폭로에 양정철은 자료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뒤 ‘전국언론노동조합’ 간부들과 심야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일부 간부들은 공안기관의 미끼가 아니냐며 윤 이병의 폭로에 의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양정철은 민간인 사찰 범죄와 자료의 일관성, 윤 이병의 탈영이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며 설득했습니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폭로를 특종 보도한 1990년 10월 5일 한겨레 1면 ⓒ한겨레

결국,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자료는 10월 5일 한겨레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당시 밝혀진 사찰 대상은 국회의원 90명을 포함 정계 136명, 종교계 186명, 총학생회 간부 등 학생 198명, 노동계 190명 등 1300여 명이었습니다.

윤석양 이병이 양정철을 찾아갔던 이유 중의 하나는 같은 학교 선배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국대학생 기자연합 회장으로 ‘자민투’ 위원으로 학생운동을 하며 긴 수배생활과 투옥까지 경험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론노보 기자로 언론계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에 민간인 사찰 사건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기자실 대못질의 주역으로 선동당했던 청와대 비서관

▲참여정부 시절 양정철 비서관과 노무현 대통령 ⓒ양정철닷컴

‘저주의 굿판 비서관’
‘독설가’
‘언론 홍위병’
‘노무현의 언론황태자’
‘기자실 대못질의 주역’

이 모든 별명의 주인공은 양정철 전 비서관입니다. 양정철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국내언론 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을 지냈습니다.

당시 양정철 비서관은 ‘기자실 통폐합’을 주도했던 인물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사와 기자의 공적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기자실을 없애거나 출입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각 부처에 흩어져 있었던 기자실을 대규모 통합형 브리핑룸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사는 출입처라는 후진적인 폐쇄적 취재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에 등록된 출입기자만이 출입해 공무원을 취재하고 자료를 독점해 보도합니다.

만약 부처 사무실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자료와 기삿거리를 요구했고, 주지 않으면 정부를 압박하는 기사를 쓰는 등 언론 권력의 병폐였습니다.

▲ 2007년 참여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룸 시스템으로 바꾸자 당시 언론은 언론을 탄압한다는 식의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 ⓒ문화일보 화면 캡처

양비는 특정 언론사끼리 담합해 타 언론사나 인터넷 매체 등은 막고 있는 기존 언론 시스템을 선진국들이 운영하는 브리핑룸 체제로 바꾸는 참여정부 언론정책의 선봉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정부 주요 기관에 출입처가 설치된 나라는 한국과 일본 등에 불과했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잘못된 관행이었습니다.

미국식 브리핑룸 시스템을 추진했던 양비를 향해 조중동은 물론이고 한경오까지도 ‘언론 탄압’의 주범이라며 공격했습니다. 심지어 기자실에 촛불을 켜 놓고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해 보도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나쁜 놈으로 만들었습니다.

MB 정권은 참여정부의 브리핑룸 제도를 공격하며 ‘언론 프렌들리’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이 호의적으로 대했던 MB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수많은 언론인이 해고됐고, 언론 자유는 최악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출마한 양정철 

▲2012년 총선에 중랑구을 예비 후보로 출마했던 양정철 전 비서관. 그는 예비 경선에서 탈락했다. ⓒ양정철닷컴

양정철 전 비서관은 2012년 총선에 중랑구을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선에는 가지도 못하고 예비 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양비의 총선 출마는 ‘정치하지 마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심지어 양비의 총선 출마는 가족조차도 반대했던 일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따라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양비가 총선에 출마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였습니다. 그가 말했던 복수는 앙갚음이나 보복이 아니라 억울하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명예회복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정치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문재인 당시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현실 정치에 끌어들였던 책임 때문입니다. 문재인 이사장이 정치에 참여했으니 그에게 힘을 보태기 위함이었습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이명박의 사람이었던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에게 노무현의 사람으로 결투를 신청했다. ⓒ양정철닷컴

양정철 전 비서관이 선택한 중랑구을 지역구의 현역은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었습니다. 진성호 의원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이명박 대선 후보 인터넷 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네이버는 이미 평정했다’는 발언을 했던 인물입니다.

양비는 노무현의 사람으로 이명박의 사람이자 조선일보 기자 출신 현역 의원을 상대하겠다며 결투를 신청한다며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만약 양비가 2012년 총선에 당선됐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총선 예비 경선 탈락 이후 양비는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합니다.

운명처럼 바뀐 문재인의 삶… 그리고 양비

▲2011년 발간된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뛰어 들고 대선 주자가 되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나왔던 ‘문재인의 운명’은 정말 운명처럼 문재인이라는 인물이 정치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그의 원고 집필을 도왔던 인물이 양비였습니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책을 내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까지는 가능했어도 책의 2부였던 자신의 인생은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문재인 이사장이 투철한 운동권 대학생이자, A급 특전사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의 삶이 투영된 책을 통해 문재인 이사장은 대중에게 그 존재감이 각인됐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하겠느냐?”라며 정치 참여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습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우리야 말로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우리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기획력과 추진력이 있는 인물…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양날의 검

▲ 문재인 대통령이 야인 시절이었던 2016년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난 양정철 전 비서관과 문재인 전 대표, 탁현민 PD ⓒ페이스북

2012년 대선과 2017년 총선에서 양정철 전 비서관은 문재인 후보의 최측근으로 캠프에서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캠프 사람이기보다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동행하며 고민했던 동지라고 봐야 합니다.

양비는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내려가 힘든 시기에 그의 곁에서 토론하고 나눴던 ‘민주주의 2.0’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개설한 토론 웹사이트)을 기반으로 나왔던 민주주의 과제를 실천하려는 행동가이기도 합니다.

양정철이라는 인물이 기획력과 추진력이 있는 인물임을 대다수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2017년 대선이 끝난 뒤에 문 대통령 곁을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양비가 곁에 있는 한 ‘친문이 다 해 먹는다’라는 말이 분명 나올 것이며, 민주당 내 친문과 비문의 갈등 유발자로 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 곁에 있는 순간 정치권과 언론의 공격이 두 배 이상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비는 쉽게 정치권에 들어오기가 어렵습니다.

언어로 정치를 하는 사람… 존경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인물 

▲양정철 전 비서관이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운영하던 양정철닷컴 ⓒ티스토리 화면 캡처

아이엠피터가 양비를 알게 된 것은 그가 블로그를 개설하고 난 뒤입니다.  MB정권에서 비판적인 글을 쓰고 있던 아이엠피터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참여정부 시절에 있었던 속사정을 알게 됐고,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양비를 볼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정말 글을 쉽게 잘 쓴다는 겁니다. 밤새 글을 쓰는 아이엠피터에 비해 양비는 뚝딱하면 글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시민들이 모르는 정치 뒷얘기와 함께 생각해 볼만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줬습니다. (총선 예비 후보로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양비는 블로그에 자주 글을 올렸다.)

오랜 기자 생활과 메시지를 작성했던 경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풍부한 글감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벽과 같았습니다. 그래도 블로거로는 아이엠피터가 선배라서 블로그 운영 등의 노하우는 조금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양비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언어로 정치를 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더 많은 글을 쓰고,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시민들이 정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도우미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양정철로 살아가야 한다

▲2018년 1월 양정철 전 비서관이 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

양정철로 살았다.
노무현을 만났다. 노무현으로 살았다.
문재인을 만났다. 문재인으로 살았다.
긴 세월이 지나 이제 다시 양정철로 산다.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곁’을 지켰지만,
대통령 문재인과는 ‘거리’를 지키는 사람.
그는 지금 나라 밖에 있다.
조용히 글을 쓴다.(양정철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 저자 소개. 카피라이터 정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살았던 양정철 전 비서관은 이제 양비가 아닌 양정철로 살아야 합니다.

그가 당장 공직을 맡는 것은 아이엠피터도 반대합니다. 지금은 길보다 흉이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가 변하지 않아 공적으로 꼽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과 경험으로 정치 현안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양비의 말을 왜곡하는 정치와 언론이 있겠지만, 시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겁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양비가 아니라, 최소한 블로거 양정철로라도  다시 시민의 곁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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