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프닝

아이엠피터가 왜 정치이야기보다 미디어 비평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정치를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도 많고 유튜브 영상도 엄청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꾸준하게 언론을 비판하는 콘텐츠는 별로 없습니다.

언론 오보가 가짜뉴스보다 더 나쁘기에 아이엠피터의 미디어 비평은 늘어나고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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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저널리즘
지금 시작합니다.

# 거들떠보자

경향신문: [메르스 재발병]입국장서 못 걸러낸 메르스, 2주가 ‘고비’
한겨레 : 3년만에 다시 메르스…추석까지 2주가 고비
동아일보 : 3년만에 온 메르스… 위기경보 관심→주의 격상
조선일보 : 3년만의 메르스… 정부는 놓쳤고, 민간은 빨랐다
중앙일보 : “열흘 설사” 알린 메르스 감염자, 공항검역관이 그냥 보냈다

2015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9월 10일 주요 일간지 헤드라인은 ‘메르스’였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메르스 최대 잠복기인 14일을 기준으로 앞으로 '2주가 고비’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메르스 위기경보가 ‘관심’에서 ‘주의’로 한 단계 격상됐음을 짚었고, 조선일보는 ‘정부는 놓쳤고, 민간이 빨랐다’며 정부 대응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중앙일보는 4면에서 ‘공항검역관이 그냥 보냈다’라며 역시 검역체계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기사를 들여다보면,
경향신문은 ‘앞으로의 2주가 고비’라는 점을 강조하며 밀접접촉자와 일반접촉자들이 최대 잠복기인 14일 동안 집중 관리받을 것이라는 점을 보도했습니다.

한겨레는 메르스 환자로 확진 판정받은 ㄱ씨의 동선을 시간대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보도했습니다.. 특히 ㄱ씨를 공항 검역에서 놓쳤다는 지적에 대해 “소화기 증상이나 근육통 등의 초기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에 ㄱ씨와 같은 비특이 증상을 모두 검역에서 걸러내는 시스템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한겨레는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밀접 접촉자 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비행기의 다른 승객 등 놓친 접촉자가 없는지 꼼꼼하게 봐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2주가 고비’라는 점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또 ㄱ씨 진료를 맡은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위중한 상태는 아니지만, 완치 판정을 내리려면 최소 2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본다. 20일께까지 다른 감염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내에서의 전파는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통해 막연한 ‘불안감 조성’보다는 긍정적인 예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첫 문단에서 ‘공항 검역소를 무사히 통과한 후 4시간여 만에 메르스 감염 진단을 받아 감염병 방역체계에 여전히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언급한 것 외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조선일보는 ‘환자와 병원의 대응이 신속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해 대규모 환자가 발생한 2015년 메르스 사태와는 여러모로 달랐던 것이다’라고 환자와 병원이 신속히 대응한 점을 먼저 꺼냈습니다. 하지만 ‘공항 검역 단계에서 환자 상태를 좀 더 꼼꼼하게 살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추가로 언급했습니다. ‘격리 조치는 아니더라도 이 환자를 추적 관리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정부의 대응 문제에 대해 다소 억지 섞인 비판을 덧붙였습니다.

중앙일보는 ‘해외 유입 감염병을 막는 첫 단추인 공항 방역망이 뚫렸다’며 기사 전반적으로 ‘구멍 뚫린 검역’을 강조했습니다.. ‘2015년 감염자 가운데 25.8%는 발열 증상이 없었다. 기침, 가래,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도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 반면 복통, 설사 등 소화기 증상을 호소한 감염자가 12.9%에 달했다’며 ‘설사’ 증상을 보인 환자를 통과시킨 검역관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기사 마지막에 ‘만약 공항 입국 단계에서 환자를 격리했다면 공항에서 음압시설이 된 앰뷸런스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했을 터이고, 그러면 출입국심사관, 의료진 4명, 가족, 택시 기사 등은 밀접 접촉자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가정을 덧붙였습니다.

3년 만에 발생한 메르스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정부 대응 덕에 크게 퍼지지 않고 있습니다. 몇몇 언론의 말처럼 공항 검역소에서 완벽하게 확인해 조치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그러나 메르스 특유의 비증상 발병이나 오랜 잠복기 등의 이유로 모든 검역에서 확인이 쉽지 않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3년 전 언론은 ‘중동식 독감’, ‘전염성이 없다’, ‘낙타 고기’ 따위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습니다. 그런 언론이 이제 와서 ‘정부보다 민간이 낫다’, ‘검역 체계가 뚫렸다’고 떠들기에는 3년 전 그때에 비해 지금 정부의 대응은 매우 적절하고 안정적입니다.

# 제대로써!보자

요즘 정치권 화두 중 하나는 ‘협치’입니다. 많은 정치인이 ‘협치’를 꺼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협치’의 뜻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협치’는 국어사전에 존재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실제로 2016년 당시 대통령이던 박근혜 씨가 국회 개원 연설에서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썰전에 출연 중이던 전원책 변호사가 ‘대통령이나 되는 사람이 국회 개원 연설을 하러 가는데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썼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협치’는 국어사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일반인들이 등록해놓은 ‘오픈 사전’으로 협치의 뜻이 설명돼 있습니다.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의미. 무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 조성을 선행하겠다는 말."
"정치를 함에 있어서 여당과 야당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여 중요 현안들을 처리하는 것을 말함.”

많은 정치인이 사용하는 만큼 대다수 언론에서 ‘협치’를 그대로 표기합니다.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했으니 사전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혹은 뜻을 제대로 모르더라도 보도를 하면 되는 것일까요?

네이버 기준으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사는 129,491건이 나옵니다. 가장 오래된 기사는 2000년 4월 21일에 올라온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일본은 학계 언론계 법조계 연구소 등 각계각층 민간인 49명으로 "21세기 일본 구상간담회"를 구성, 지난 1월 "일본의 프론티어는 일본 내에 있다:자립과 협치로 이룩하는 신세기"라는 보고서를 냈다’는 문장 속에서 ‘협치’가 등장합니다.

이후에는 2002년에 지역 뉴스를 전하며 ‘협치와 혁신으로 자치 발전 실천’이라는 문장에서 사용됐습니다. 이외에도 협치를 '협력 정치'로 풀어서 쓰는 경우도 보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사용된 단어이지만 여전히 명확한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협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마다 자기가 원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협력’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도움과 지지를 달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의견을 모아 함께 하자’는 뜻으로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고작 ‘협치’를 ‘표나 의석 정도를 도와줄 테니 우리 말도 좀 들어주라’ 정도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언론은 정작 누구도 ‘협치’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협치’라는 말로 멋대로 축약해서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많은 곳에서 빈번하게 사용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뜻을 모르는 단어는 언론에서 무조건 인용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정확히 물어봐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보도자료를 받거나, 받아쓰기 바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협치’의 정확한 뜻,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보의 역사

지난 시간에 시민들은 오보를 가짜뉴스보다 더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알려드렸습니다. 단순히 시민들의 생각뿐일까요? 오보가 얼마나 엄청난 사태를 불러 오는지, 역사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1면입니다. 제목을 보면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삼팔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주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미국은 조선의 즉시 독립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소련은 우리를 다시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12월 16일부터 27일까지 미국, 영국, 소련 외무 장관들이 모스크바에서 모여 전후 처리를 논의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기사가 나온 시점에서는 회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면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 받았다고 하는데’,’ 어떠한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정확한 최종 합의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단정해서 보도한 셈입니다.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를 보면 신탁 통치안이 합의됐습니다. 그러나 신탁 통치안을 제안한 쪽은 동아일보의 보도와는 다르게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었습니다.

동아일보의 오보 이후 우리나라는 신탁통치 반대 데모와 파업이 잇따랐으며 이후에는 신탁통치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으로 유혈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동아일보는 12월 27일 오보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소련과 좌익을 비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왜곡 보도를 해왔습니다. 동아일보를 창간했던 김성수가 당시 최대 우파 정당이었던 한민당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의 오보 이후 한반도가 혼란에 빠지면서 미소 공동위원회는 유명무실해졌고, 남북 단독정부 수립 및 영구 분단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오보는 단순히 왜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뒤집을 수 있는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 클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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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저널리즘’
다음 시간에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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