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을 빼주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인구정책은 1960년대 후반에는 가족계획 차원에서 둘만 낳자는 산아 제한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여성 피임약 등을 보급하면서 산아제한을 노렸지만, '여성 피임약 =성생활을 즐기는 여성'이라는 편견과 암을 유발한다는 소식 등이 나오면서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산아제한 정책에서 가장 효과를 본 것은 남성에 대한 정관수술이었습니다. 수술 비용이 적으면서도 영구적 피임이 가능한 방식이라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정관수술 혜택은 엄청났습니다. 우선 개인적으로 정관수술을 받은 남성에게는 근로보상금 등의 명목으로 돈까지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정관수술을 받으면 정력이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정관수술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예비군 훈련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1974년부터 예비군에 대한 정관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2년부터 국방부 훈령으로 예비군 훈련 중의 정관수술자에 대해서는 훈련 잔여시간을 면제한다는 정책이 시행됐습니다.
정부는 단순하게 예비군 훈련만 면제해주지 않고, 정관수술을 받은 사람에게는 주공아파트 등의 아파트 청약 우선권 등을 줬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고자 아파트', '내시 아파트'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예비군 훈련 중에 정관수술을 받은 사실을 숨긴 상태에서 아내가 임신을 해 이혼을 했다는 얘기가 술자리에서 나돌던 시대였습니다.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을 빼주던 정책은 1990년대까지도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정관수술을 받는 예비군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관련기사: 훈련예비군(豫備軍) 정관수술 계속 감소추세)
1984년에는 무려 8만 명의 예비군이 훈련 중 정관수술을 받았지만, 1991년은 1만 명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기혼자들의 상당수가 예비군 훈련을 통해 수술을 받았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구 증가율이 1% 미만으로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예비군 훈련 때마다 가족계획협회 직원들이 예비군을 대상으로 가족계획을 홍보하고 정관수술을 권유하던 시대는 이제 누구도 믿기 힘든 과거 속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출산을 주도하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어이없는 생각은 2018년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관련기사: '소득주도성장'에 맞선 김성태 전략이 고작 '출산주도 성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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