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연맹에 희생된 ‘비운의 남매’ 노선영과 노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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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연맹의 안일한 행정 속에 선수촌에서 퇴촌 당한 노선영 선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부문에서 실망스런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선수 3명이 동료들과 함께 경기해야 하는 팀추월에서 노선영 선수가 큰 격차로 마지막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함께 출전했던 김보름과 박지우 선수는 물론이고 빙상연맹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됐습니다. 지난달 노선영 선수는 연맹의 행정 착오로 평창올림픽 출전이 무산됐습니다.

선수촌에서 퇴촌 된 노선영 선수는 인스타그램에 “(동생) 진규는 금메달 만들기에 이용당했고 나는 금메달 만들기에서 제외당했다. 4년 전 연맹은 메달 후보였던 동생의 통증 호소를 외면한 채 올림픽 메달 만들기에 급급했고, 현재 메달 후보가 아닌 나를 위해선 그 어떤 노력이나 도움도 주지 않는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습니다.

노선영 선수가 말한 동생 노진규는 누구이며, 왜 이런 글을 남겼을까요?

‘국제대회 11연속 금메달, 한국 쇼트트랙의 차세대 에이스 노진규’

▲고(故) 노진규 선수는 김동성·안현수의 뒤를 잇는 쇼트트랙 스타였다. 2017년 10월까지도 세계빙상연맹 홈페이지에는 그의 3,000미터 세계신기록이 남아 있었다.

노진규 선수는 스케이트 선수였던 누나 노선영을 따라 쇼트트랙 선수로 입문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될 만큼 엄청난 재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노진규 선수는 2010년 세계주니어 선수권 남자부 개인 종합우승을 시작으로 국제빙상연맹(IS)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3관왕,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 2관왕 등 독보적인 성적을 거뒀습니다.

특히 노진규 선수는 2011년부터 2012년 사이에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시리즈 6개 대회에서 남자 1.500m 부문 금메달을 모두 땄습니다. 그의 국제대회 11연속 금메달 획득과 세계 랭킹 1위 성적은 외신들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2011년 쇼트트랙 간판스타였던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하면서 노진규 선수는 차세대 에이스로 부각됐습니다. 2013년 러시아와 독일 국제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딴 노 선수는 2014년 소치올림픽 금메달 유망주였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출전해야만 했던 노진규’

▲노진규 선수는 암 투병 중에도 국가대표팀의 출전권을 위해 세계 경기에 출전했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노진규 선수는 2013년 소치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종합 성적 3위로 개인 종목 출전이 무산됐습니다. 계주에만 출전할 수 있었지만, 노 선수는 월드컵 시리즈에 계속 출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월드컵 시리즈의 개인 성적에 따라 대표팀에 소치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진규 선수는 2013-2014년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땁니다. 하지만 경기 도중에 입은 어깨 부상으로 조기 귀국을 했고, 치료 과정에서 골육종이라는 암이 발견됩니다. 일부에서는 노진규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전 부진이 암 때문이었다고도 말합니다.

어깨 부상과 암으로 훈련조차 힘들었던 노진규 선수는 월드컵 3차 대회와 4차 대회 개인종목에 출전합니다. 개인 출전권이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부진했기 때문에 빙상연맹에서 노 선수를 투입한 것입니다. 노진규 선수는 1,500m와 1,000m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한국 선수의 올림픽 출전권 확보에 큰 보탬이 됩니다.

2014년 1월 노진규 선수는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훈련하다가 왼쪽 팔꿈치 뼈가 부러집니다. 치료 과정에서 6㎝이던 종양은 13㎝까지 커진 것이 드러났고, 결국 노 선수의 올림픽 출전은 무산됐습니다.

▲노선영 선수는 동생 노진규 선수가 그토록 출전하고 싶었던 올림픽에 나가고 싶었다. 그녀에게 메달은 중요하지 않았다. ⓒSBS화면 캡처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던 노진규 선수는 2016년 4월 24살의 젊은 나이로 채 피지도 못하고 쇼트트랙 선수의 삶을 마감합니다.

노진규 선수는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경기였지만, 국가대표팀을 위해 출전했고 부상을 입었습니다. 누나 노선영 선수가 ‘연맹은 메달후보였던 동생의 통증 호소를 외면했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누나 노선영 선수는 동생이 출전하지 못한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빙상연맹의 안일한 행정 속에 무산됐고,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평창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노선영 선수는 팀추월 경기로 또다시 상처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동생 노진규 선수는 빙상연맹의 메달 만들기에 희생됐고, 누나 노선영 선수는 메달 만들기에서 제외당하면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노선영, 노진규 두 남매의 이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병마와 빙상연맹의 외면 속에서도 올림픽 정신에 따라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