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고 있는 송당리 다세대 주택 옥상에서 바라 본 풍경, 멀리 오름과 바다가 보인다.
▲ 살고 있는 송당리 다세대 주택 옥상에서 바라 본 풍경, 멀리 오름과 바다가 보인다.


제주에 온 지 8년이 넘었습니다. 제주살이가 얼마나 됐는지를 계산하는 방법은 쉽습니다. 에순양의 나이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오자마자 둘째 에순양이 태어났고, 벌써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동생 기저귀를 보면서 냄새난다고 투덜대면서도 함께 놀아줬던 첫째 요돌군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됩니다. 빠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10년도 안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주에 내려와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이 마음에 드는 마을을 선택해 정착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제주 구좌읍에 있는 송당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이야 유명한 식당이나 카페 등이 있어 알려졌지만, 초기에는 택시 기사조차 '그 촌구석까지 어떻게 갔어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외진 곳입니다.

오름이나 바다 등 제주에 반해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업 1인 미디어 활동을 위해 내려온 터라 딱히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보니 이토록 좋은 곳을 왜 더 빨리 내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도 좋지만, 살아가면서 아이들을 키우기에 최적의 장소임을 느낍니다. 물론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어 만족하고 살아갑니다.

'작은 시골 초등학교, 돈이 들지 않아 좋았다'

▲송당초등학교 목관앙상블은 마을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지난 9월에 열린 마을 주최 축제에서 공연하는 모습.
▲송당초등학교 목관앙상블은 마을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지난 9월에 열린 마을 주최 축제에서 공연하는 모습.


아이들이 다니는 송당초등학교는 시골 학교라 전교생이 56명에 불과합니다. 한때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 통폐합으로 학교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마을에서 돈을 모아 12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다세대 주택까지 건축해 학교 살리기에 나선 덕분에 지금의 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학교 사랑이 넘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학교를 중심으로 교류를 하기도 합니다. 시골살이가 만만치 않은 제주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제일 좋은 점은 돈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육지에서는 '방과 후 수업'이나 '체험 활동비'에 '학원비'까지 초등학생도 돈이 들지만, 여기서는 거의 무료에 가깝습니다.

'방과 후 활동'도 학생 수가 적어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마음대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골프', '목관악기', '중국어', '영어', '미술' 등 배울 수 있는 과목이 다양합니다.

특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목관악기 수업 덕분에 요돌군은 '베이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둘째 에순양도 올해부터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송당초등학교 목관앙상블은 매년 연주회도 하고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어, 시골 학교가 가질 수 있는 폐쇄성과는 거리가 멀게 됐습니다.

'마을에서 보기만 했던 말, 이제는 타고 싶어요'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에순양. 너무 어려 전문 교육을 받는 대신 체험 승마로 대체하고 있다.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에순양. 너무 어려 전문 교육을 받는 대신 체험 승마로 대체하고 있다.


요새 에순양은 시간만 나면 '말 타러 가자'고 합니다. 학교에서 체험 활동으로 몇 번 말을 타고 오더니 이제는 짧게 말 타는 것 말고 오래 타겠다고 보챕니다.

에순양은 말을 키우는 목장이 많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말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을 보면서 굉장히 친근감을 느낍니다.

'저렇게 말을 좋아하다 승마 선수 되겠다고 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마저 듭니다. 정유라씨 사건 이후로 승마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권력과 돈이 필요한 운동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이 많은 제주라서 그런지 주위에 승마장도 많고, 승마협회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교육 프로그램도 꽤 있습니다. '승마 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말과 관련한 직업으로 살아도 제주에서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단,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이라 전문 승마 프로그램이나 교육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참기 어려운 에순양을 달래느라 가끔 돈 주고 체험 승마를 하러 가기도 합니다.

'제주 유일의 중학교 야구부에 가기 위해 한 시간씩 버스를 타다'

▲ 제주 오라 야구장에서 선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요돌군. 키가 큰 덕분에 야구부에 들어 갈 수 있었다.
▲ 제주 오라 야구장에서 선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요돌군. 키가 큰 덕분에 야구부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첫째 요돌군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야구부에 다니기 위해 중학교를 시내로 가기 때문입니다. 원래 요돌군은 취미로 동네 아이들과 주말에만 유소년 야구단에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체격 조건이 좋아 중학교 야구부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키가 벌써 177센티미터라 운동을 시켜 보라는 권유는 있었지만, 야구를 하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문제는 제주도가 야구 선수로 활동하기 그리 좋은 여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각 한 곳 밖에 없습니다. 중학교 야구팀이 한 곳뿐이라 전용 연습장도 없어 매번 옮겨 다니고, 지원도 많은 편이 아닙니다.

특히 집에서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가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가야 합니다. 늦게 훈련이 끝나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밤 9시를 훌쩍 넘기니 늘 마음을 졸입니다. (6학년이지만, 미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돌군이 너무 좋아해서 말릴 수가 없습니다. 육지에 놀러 가서 버스를 타면 벌벌 떨던 아이가 지금은 혼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와 야구장에 갑니다. 학교 갔다 오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던 아이가 집에 오면 스트레칭에 팔굽혀 펴기까지 합니다.

꼬박꼬박 오늘은 감독님과 코치님이 뭘 가르쳐 줬는지 자랑하며 기뻐하는 아이를 보면, 차마 힘드니 하지 말자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엠피터가 아니라 두 아이를 키워주는 후원자'

▲10월 1일~10월 31일까지 후원계좌와 페이팔,,오마이뉴스 좋은 기사 등으로 후원해주신 분들.
▲10월 1일~10월 31일까지 후원계좌와 페이팔,,오마이뉴스 좋은 기사 등으로 후원해주신 분들.


요돌군과 에순양 곁에 있는 사람은 아빠와 엄마이지만, 실제로 두 아이를 키워주는 분들은 후원자입니다. 에순양이 태어날 때 기저귓값을 보내주던 분들이 이제는 요돌군의 야구 지원까지 해주게 됐습니다.

두 아이를 지켜주는 후원자가 있어 항상 고맙고 든든합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아빠의 생각보다 아이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자유롭게 1인 미디어 활동하고 두 아이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라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 초등학생이 된 에순양을 6학년 오빠 요돌군이 데리고 등교 하는 모습.
▲ 초등학생이 된 에순양을 6학년 오빠 요돌군이 데리고 등교 하는 모습.


요돌군과 에순양이 앞으로 어떻게 커 나갈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시켜주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떻게 성장할지 예측할 수 없는 아이들을 무조건 아빠의 고집대로 키우는 것도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가려고 하는 길의 지도는 보여 줄 수 있어도, 함께 가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충분히 혼자서도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부모가 얼마나 그 믿음이 있는지에 따라 달렸다고 봅니다.

요돌군과 에순양은 길을 걷다가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빠,엄마 이외에도 손을 잡아주고 일으켜줄 수 있는 수십 명의 삼촌,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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