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생애 첫 ‘면도’를 바라 본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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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6학년치고는 키가 큰 요돌군은 성장 징후도 빠른 편이다. 간혹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며칠 전 요돌군이 생애 첫 면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코 밑이 거뭇해지고 있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라 그냥 놔뒀습니다. 하지만 점점 굵어지고, 심지어 턱밑에도 수염이 나서 초등학생답게 보이려고 면도를 시켰습니다.

면도를 시작하자마자 아빠와 아들 모두 긴장했습니다. 아빠도 누군가에게 면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처음이었고, 아들도 면도기가 피부에 닿자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면도 크림을 바르는 요령과 면도하는 순서를 가르쳐 주고 시범까지 보여줬습니다. 혼자 해보라고 했지만, 무서워 하는 까닭에 아빠가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줬습니다.

마냥 어린아이 같던 요돌군이 면도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다 컸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 아빠와 같은 남자라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현실남매가 된 요돌군과 에순양’

▲ 어릴 적에는 항상 같이 놀던 요돌군과 에순양, 지금은 필요할 때만 얘기하고 같이 놀지도 않는다.

면도할 나이가 됐을 만큼 컸으니, 아빠처럼 에순양을 잘 돌봐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은 드라마 속의 우애 좋은 남매나 동생을 챙겨주는 자상한 오빠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는 동생과 함께 놀아주거나 손을 잡고 다니기도 했던 요돌군, 이제는 손은커녕 동생을 귀찮아합니다. 오히려 부쩍 잔소리만 늘었습니다.

에순양이 밥 먹을 때 자세가 바르지 않거나, 기침하면 “똑바로 앉아 밥 먹어라”.”기침할 때는 입을 손으로 가리고 해라”부터 “왜 학교에서 뛰어다니냐?”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합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하는 아빠의 잔소리는 듣기 싫어합니다.

유치원 다녔을 때만 해도 에순양은 그저 “오빠가 뭐라 했어”라며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빠의 말에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티격태격하기 일쑤입니다.

어쩌면 요돌군은 아빠처럼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권위에 반항하는 에순양이 있기에 흔히 말하는 ‘현실 남매’가 됐습니다.

현실남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매는 우애가 좋고 서로를 위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서로 싸우거나 거칠게 말을 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고 합니다. 아빠가 요돌군에게 보여 준 모습이 행동 하나하나 꼬투리 잡는 ‘잔소리꾼 아빠’였나 봅니다. 요돌군을 보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이상한 행동을 했는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점점 자기만의 길을 걷는 요돌군’  

▲마라도에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 이 사진 찍겠다고 아빠는 요돌군에게 치킨을 사줘야 했다.

엄마는 에순양과 아빠는 요돌군과 함께 잠을 잡니다. 간혹 혼자 자겠다며 아빠를 밀어내기도 하더니, 요새는 노트북이 갖고 싶은지 같이 잠을 자면서 “노트북 언제 사줄 거야?”.”노트북 사면 게임 깔아도 되지?”라며 아양(?)을 떨기도 합니다.

밤마다 학교 여사친들과 무슨 카톡을 그리 하는지 스마트폰을 보면서 낄낄 대기도 합니다. 내년에 중학교에 올라가면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듭니다.

아빠의 생각대로 아이가 자라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요돌군을 보면 이미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방 청소해”라고 소리를 질러도 “왜 지금 당장 해야 해?”라며 반항을 하기도 합니다. “같이 읍내에 가자”라고 해도 싫어합니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 외식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아이를 아빠가 원하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접었습니다. 오히려 아빠가 생각하는 테두리를 벗어나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게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불안합니다. 아이가 자란 만큼 아빠는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듭니다.

‘어쩌면 요돌군은 아빠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아이일지도…’

▲2017년 8월 아이엠피터를 후원해주신 분들 명단. 후원계좌와 오마이뉴스 좋은 기사 후원 포함

6학년 2학기가 되면서 요돌군은 ‘헌법’과 ‘정치’를 배운다고 자랑을 합니다. 나름대로 “아빠, 왜 개헌을 해야 하는지 알아?”라는 질문도 던집니다.

지금은 아빠의 답변을 들을 때가 더 많지만, 간혹 “아빠, 그래도 나쁜 사람들이 정치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처벌하는 편이 낫잖아”라며 과격한(?) 생각을 말하기도 합니다.

“아빠, 왜 사람들이 아빠를 후원해?”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저도 생각합니다. 왜 아이엠피터를 후원할까 하는 고민을 해봅니다. 그리 잘 쓴 글도 아닌데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요돌군은 아빠의 글을 자주 읽습니다. 아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의 댓글을 유심히 보기도 합니다. 육지에 가서 아빠가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도 옆에서 듣습니다.

요돌군이 어떤 사람이 될지 상상조차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글을 읽고 독자들과 후원자들의 생각을 옆에서 보고 자란 만큼, 최소한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겠지라는 믿음도 듭니다.

▲ 유치원 등굣길에 현관 문에 붙어 있는 사마귀를 보고 놀란 요돌군.(좌) 지난 대선 기간 민주당 당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요돌군(우)

어쩌면 요돌군은 아빠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도 모르는 새 아이의 생각과 몸은 자랐지만, 아빠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아빠, 2주 동안 밀린 용돈 빨리 줘”
“너, 지갑에 돈 남았잖아”
“그럼 직원 통장에 돈 있다고, 사장이 월급을 안 주나?”
“아빠 5만 원 짜리 밖에 없어, 나중에 줄게”
“내가 바꿔 올 테니, 지금 줘”

아빠는 요돌군이 언제나 아빠만 의지하고, 아빠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아이가 되길 원했나 봅니다. 그러나 요돌군은 이미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인격체가 됐습니다.

이제 어릴 적 귀엽고 앙증맞았던 아들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 명의 남자로 요돌군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