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실 체육관에서는 제67주년 6·25전쟁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언론마다 6·25전쟁 참전용사 관련 미담 기사 수십 건이 보도됐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작년부터 '전역연기장병 대기업 특채 이후'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2015년 전역연기 장병들의 대기업 특채 이후 근황을 보도했던 2016년 언론 기사를 요약한 글입니다. 올라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6.25전쟁 기념식이 있었던 날,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왜 공감을 받았고, 당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리해봤습니다.

① 애국심이 스펙, 전역 연기 장병 특채 '애국 보훈 기업' 

▲대기업의 전역 연기 장병 특채 관련 홍보성 기사들 ⓒ네이버 뉴스 캡처
▲대기업의 전역 연기 장병 특채 관련 홍보성 기사들 ⓒ네이버 뉴스 캡처


2015년 9월, SK와 롯데그룹이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을 특별채용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북한의 포격 도발로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의 애국심을 높이 사 스펙으로 인정했다'라며 대대적인 언론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뉴스마다 전역 연기 장병들의 대기업 특채 면접 과정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전역 연기 장병 특채를 추진한 SK, 롯데 그룹은 애국심을 인정한 기업으로 '애국 보훈 기업' 등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질수록 '전역 연기 장병 대기업 특채'는 투철한 애국심과 안보관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② 대기업 특채? 아웃소싱 자회사 콜센터로 배치



전역 연기 장병들이 대기업에 특채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6개월 후,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KBS가 보도했습니다.

SK와 롯데의 특별채용 대상이었던 1차 전역연기자 87명 가운데 62명을 조사한 결과 당시 입사 희망 인원 38명 중 10명이 퇴사를 했고, 2명이 탈락했습니다.

퇴사 또는 탈락한 전역 연기 장병들의 이유를 살펴보니,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직종이 아닌 '판매, 영업, 콜센터 업무'에 대거 배치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역 연기 장병들은 SK, 롯데가 대기업이라고 취업을 희망했지만, 이들이 배치된 곳은 아웃소싱 회사였습니다. 사실 콜센터나 유통분야, 마트, 편의점 등은 꼭 특별 채용이 아니어도 취업이 가능했던 직종이었습니다.

③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전역 연기 장병을 이용한 재벌



롯데그룹은 전역 연기 장병 특별 채용을 진행하면서 '이들이 보여 준 애국심이나 책임감이라고 한다면 기업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전역 연기 장병 특별 채용 당시 롯데그룹 상황을 보면, 장병들이 아닌 재벌 총수를 위한 채용이었습니다.

당시 롯데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일본 기업'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이 거론됐고, 연 매출 2조 원 면세사업권 연장 심사도 예정돼 있었습니다.

결국, 롯데그룹은 부정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애국심 마케팅'을 통해 전역 연기 장병들을 이용한 셈입니다.

④ 고졸이라 무시 당했던 전역 연기 장병



당시 장병들은 대기업 특채 등의 혜택을 위해 전역을 연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고참인데 무책임하게 전역할 수 없다. 집에 계신 부모님 때문에 제가 안 싸우면 안 되겠다'라는 책임감 때문에 전역을 연기했습니다.

그러나 장병들의 이런 책임감은 사회에서는 아무 필요가 없었습니다. 롯데제과에 입사한 장병은 자신의 이력서를 본 지사장이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대놓고 무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은 언론에는 특별채용하겠다고 홍보했지만, 실제 이들은 오히려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롯데그룹 홍보실은  "박사 공채도 20~30%가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한다"라며 "그 정도 비율이 퇴사하는 게 특별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⑤ 애국심 이전에 국방 적폐 청산부터

▲2015년 9월 당시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은 '상급부대에 있는 사람은 높은 상을 받고, 밑에 있는 사람은 절차를 지키느라 상을 못 받았다'라고 밝혔다. ⓒMBN뉴스 캡처
▲2015년 9월 당시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은 '상급부대에 있는 사람은 높은 상을 받고, 밑에 있는 사람은 절차를 지키느라 상을 못 받았다'라고 밝혔다. ⓒMBN뉴스 캡처


2015년 당시 전역을 미룬 장병은 모두 16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86명만 육군총장 명의의 표창을 받았고 나머지 74명은 표창을 받지 못했습니다.

군대 보고 체계상 전역 연기 신청을 했어도, 상급부대 근무 장병은 표창을 받았고, 하급부대 장병은 표창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군대 내 불합리한 일들은 너무나 많아 셀 수조차 없습니다.

현충일이나 6.25기념식이 있으면 언론들은 '애국심'을 강조하는 보도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장병들은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지,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무시를 당합니다.

'애국심 마케팅' 이전에 병사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당한 보상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한민국 군인은 쓰다가 버리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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