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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랐던 역대 최악의 ’88서울올림픽’

2012년 7월 30일

아무도 몰랐던 역대 최악의 ’88서울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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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상한 심판 판정으로 화가 나는 시간도 있고,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을 보면서 흐뭇해하기도 합니다. 방송 3사는 연일 올림픽 특집 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가운데, 타임지 온라인판에서는 최악의 올림픽 개막식으로 ’88 서울올림픽 개막식’을 선정해서 화제를 낳았습니다.

타임지가 서울올림픽을 최악으로 평가한 이유는 아래 사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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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막식 때마다 빠지지 않는 성화 점화식이 있습니다. 88 서울올림픽 때도 3명의 성화점화 주자들이 성화대에 올라 성화 점화를 했는데, 당시 성화대에 앉아 있던 비둘기떼가 성화 점화와 동시에 불에 타 죽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타임지는 ‘사실상 한국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파티였지만, 비둘기떼가 성화에 타 죽는 등 시작부터 불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동물애호가 입장에서 보면 끔찍한 사건이지만, 88 서울올림픽을 민족 최대의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를 가지고 무슨 최악의 올림픽 개막식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88 서울올림픽은 그 시작부터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순수한 체육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를 위한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하다’

일반 국민 중에는 전두환과 노태우, 이 두 사람이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88 서울올림픽은 전두환과 노태우가 아닌 박정희 시절부터 유치를 위해 노력했던 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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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서 88서울올림픽은 박종규 경호실장이 박정희에게 건의하여 인가를 받고 추진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박종규는 박정희 독재시절 무려 10년 동안 박정희의 경호실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일명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의 박종규는 ‘8.15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으로 물러났지만, 권총을 차고 박정희와 독대할 정도로 박정희에게 총애받던 인물입니다.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 대회’를 유치한 박종규는 박정희에게 ‘올림픽 유치’를 건의합니다. 박정희는 1970년 아시안 게임을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했을 때 과도한 대회개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반납했던 인물인데, 어찌 된 일인지 박종규의 올림픽 유치를 적극 찬성하고, 박종규를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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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올림픽 유치 찬성 배경을 보려면 1975년 이후의 정치 상황을 봐야 합니다. 1972년 유신 헌법에 규정된 ‘긴급조치 9호’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했고 1978년 제9대 대통령 선거를 본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쏟아 나오자,  박종규는 이런 민심을 바꿀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박정희는 이런 박종규의 제안에 동조하게 됩니다.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아버지가 1979년 저격당하지 않았으면 정권을 내놓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올림픽과 같은 행사를 유치하려고 했다는 점을 본다면 과연 그가 권좌에서 내려왔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전두환, 3S 정책을 통해 올림픽의 영광을 차지하다’ 박정희 사망 이후 올림픽은 흐지부지 없어지는 것 같다가, 갑자기 전두환이 전임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업을 이어 계속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이론을 내세워 다시 올림픽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두환의 올림픽유치 이전에 우리는 그가 12.12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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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1980년 5.18 광주 학살을 자행하고 난 뒤에 국민의 눈과 귀를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3S 정책을 펼칩니다. Screen,Sex,Sports를 뜻하는 3S는 돈이 되는 사업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실 전두환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던 정책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년이 다가오자 전두환은 1981년 5월 여의도 공원에서 ‘국풍81’이라는 대규모 문화 축제를 5일 동안 밤낮으로 열리고, 방송은 온종일 ‘국풍81’을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은 1년 전 광주의 아픔과 유혈 사태는 모두 잊어버리고 맙니다.

1982년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성인영화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극장가와 잡지,신문 가판대는 자극적인 에로물과 성인 여배우들의 사진이 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82년 프로야구가 개막되는데, 이런 3S 정책을 통해 국민은 정치는 잊어버리고 자극적인 여배우의 사진과 프로야구의 함성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을 위한 올림픽? 권력자를 위한 올림픽’

전두환은 3S 정책을 통해 자신이 피로 이룩한 정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면서 올림픽유치도 손을 대는데, 실제로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일본 나고야로 사실상 모든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올림픽유치가 힘들어지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올림픽유치 민간추진위원장에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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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바덴바덴에서 서울이 88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을 때 정주영보다 정부 인사들이 부각된 사진

정 회장을 위원장에 임명한 이유는 올림픽이 일본 나고야로 기정사실로 된 상태에서 정부가 적극 나섰다가 망신을 당할 수 있으니 민간인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니 김택수 IOC 위원은 아예 바덴바덴에서 “서울시는 세 표밖에 안 나온다. 한 표는 내 거고 한 표는 미국거고 한 표는 대만 거다” 라는 말을 하면서 오히려 유치전 개막일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정주영을 비롯한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바덴바덴에서 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결정되자, 정주영은 슬그머니 빠지고 노태우가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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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대한체육회 이취임식, 침통한 표정으로 퇴임사를 하는 정주영 회장 출처:동아일보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면서 정주영 회장은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올림픽을 준비하는데 이런 와중에 아시안 게임을 1년 앞둔 1985년 돌연 정주영 회장이 대한체육회 회장에서 물러나고, 노태우가 취임합니다. 이제 정주영의 일은 거기까지였다는 뜻입니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통해 전두환의 후계자였던 노태우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태우는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영광을 누리고, 그동안 일했던 정주영 회장은 박수를 받는 자리에는 끼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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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경향신문 사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번 LA 올림픽에서의 영광은 전두환 대통령이 집념을 가지고 강력하게 추진한 체육진흥정책의 결실이라고 보며, 그와 같은 체육중시 정책은 88올림픽때까지 계속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설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는데 정부가 펴낸 ‘LA 올림픽 홍보대책 추진현황 보고서’입니다.

▶ ‘선수들을 신화적 존재로 영웅화 할 것’
▶ ‘정치 홍보 방안을 강구할 것’
▶ ‘체육 입국을 위한 각하의 영도력과 집념을 부각할 것’

올림픽이 순수한 체육 행사라고 믿고 있던 국민이 안다면 기가 찰 정부의 올림픽 홍보 보고서입니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이렇게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순진한 국민은 방송에서 보여준 그대로 권력자들이 정정당당한 체육정책을 펼치고,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처럼 순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발전시키고 함께 잘 살겠다는 마음 대신,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권력을 쟁취하고 장악하고 부귀를 누리며 살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그대로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국민이 똑똑하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정치인에게 당할 수 있습니다. ‘정정당당 KOREA 대신에 정정당당 정치’가 먼저 되도록 온 국민이 정치에 스마트해지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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