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씨가 구속된 지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5월 23일 박근혜씨는 호송차를 타고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심리로 열린 첫 공판 기일에 출석했습니다.

박근혜씨는 53일간의 구치소 생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림머리를 하고 재판에 나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박씨는 머리핀으로 머리를 고정하고 나와 구치소의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씨가 했던 머리핀은 플라스틱 재질로 구치소에서 영치금으로 살 수 있는 물품이었습니다. 이날 박씨는 1660원짜리 집게핀 1개와 390원짜리 머리핀 3개로 머리를 고정했습니다. 총 2830원으로 '셀프 올림머리'를 한 셈입니다.

박근혜씨가 구치소 생활 중에도 올림머리를 하고 재판에 나온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과연 그녀가 올림머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봤습니다.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하기와 유사한 박근혜의 육영수 따라하기'



박근혜씨의 올림머리 기원은 육영수씨라고 봐야 합니다. 육영수씨는 생전에도 한복차림에 올림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단아했던 육씨의 모습은 당시 많은 국민에게 '퍼스트레이디'가 아닌 '국모'처럼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씨는 1974년 어머니 육영수씨가 사망한 이후에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했습니다. 어머니와 비슷한 올림머리를 하고 행사에 나가면, 사람들은 '생전의 육영수 여사와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박씨의 육영수씨 따라하기는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하기로 보면 됩니다. 북한 김정은도 권력의 전면에 나서면서 할아버지 김일성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그대로 따라해 '김일성이 살아온 것 같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얼마 전에 헤어 스타일을 한번 바꾸었다. 우리 눈에는 낯익은 틀어 올린 머리를 내려서 단발 모양으로 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 새마음 봉사단의 간부들이 예전 머리 모양에 대한 아쉬움을 금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고 나서 박 이사장은 “여러분 때문에 머리도 맘대로 못 빗어요”하면서 웃었다고 한다.”(레이디경향, 1988년 9월 8일)

♦기자: 머리모양이 옛날 그대로 변함이 없는데 바꿀 생각은 없습니까
●박근혜: 웬걸요, 1년 전엔가 한 번 바꿔봤어요. 그랬더니 난리에요. 새마음 봉사단 식구들은 말할 것 없고 뵙는 분마다 옛날 머리가 훨씬 좋다고 하셔요. 그래서 다시 옛 모양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주간조선 1988년 11월 13일 인터뷰)

독재자의 후손들은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외모가 미치는 영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근혜씨가 수십 년 동안 올림머리를 고수한 이유는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그대로 유지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올림머리를 위해 철모도 쓰지 않았던 박근혜'



2005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씨는 육군본부 국정감사를 위해 계룡대를 찾았습니다. 이날 실탄 사격이 있었는데 박씨는 철모를 쓰지 않았습니다. 실탄 사격장에서 다른 정치인들이 철모를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유는 '머리'때문이었습니다.

박근혜씨는 차에서 잠시 잠을 잘 때도 절대로 의자에 머리를 기대지 않았을 정도로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녀의 이런 집착은 세월호 참사 당일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올림머리를 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사례에서도 드러납니다.

탄핵 심판 이후 박근혜씨는 삼성동 자택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탄핵 심판 변호인이었던 김평우 변호사가 박씨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자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변호사도 들어가지 못했던 삼성동 자택을 전담 미용사였던 정송주 원장은 들어갔습니다.

박근혜씨는 3월 30일 구속영장 실질 심사 당일에도 어김없이 전담 미용사였던 정송주, 정매주 자매를 불러들여 올림머리를 했습니다. 구속과 상관없이 박씨에게는 올림머리를 통해 보여줄 자신의 모습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박근혜 올림머리, '나는 여전히 이 땅의 국모다'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씨의 올림머리에 대해 “청와대를 나온 박 전 대통령이 올림머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것은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무죄의 항변” 이라며 “내일 아침 더 큰 올림머리를 하고 더 멋진 옷을 입고 나타날 것이다. 마치 여왕님께서 가엾은 백성을 바라보듯 아련한 미소를 날릴 것”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주장처럼 박씨는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조사를 받으러 갈 때도 올림머리를 했고, 첫 재판이 열리던 5월 23일에도 올림머리를 했습니다.

박근혜씨의 정치 입문은 최태민씨의 영향이 큽니다. 최씨는 1970년대 구국선교단과 새마음봉사단 활동 때부터 박씨에게 '여성대통령','아시아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얘기했습니다. 박정희 사망 이후에도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정치적 야망을 자극했습니다.

최태민의 최면인지 자극 때문인지 박근혜씨는 대통령보다는 이 땅을 지배하는 '국모'처럼 행동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는 첫 재판에서 "헌법은 국민에게 주권이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민은 법을 지키고 노력할 의무를 지고 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사사로운 이득을 취득하기 위해 절차를 무시하고 권한을 남용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라는 검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여전히 주요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습니다.

박근혜씨에게 올림머리는 '나는 여전히 이 땅의 국모다'라는 상징이겠지만, 국민에게는 '독재와 불법'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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