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딸 에스더야, 너는 항상 역사의 현장에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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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딸 에스더, 벌써 우리 딸이 유치원을 졸업했구나. 유치원 입학식이 시작됐는데도 의자 밑에서 까불며 나오지 않던 에스더가 이제 의젓하게 꽃다발을 받고 졸업 사진도 찍다니, 아빠 눈에는 참 신기하기만 하구나.

지금은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아서 유치원에 빠지지 않고 갔지만,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해서 엄마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일들 기억나니?

더 자고 싶다고 일어나지 않기,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며 옷 타령하기, 유치원에 갈 때마다 업어줘, 안아달라고 보채기, 유치원 문 앞에서 들어가기 싫다고 울기, 아빠가 오죽하면 ‘유치원 등원 전쟁’이라고 불렀겠니.

‘2014년, 세월호의 아픔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단다’ 

▲아빠가 비행기에서 읽었던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석간 신문이야.

2014년 4월 16일, 이날 아침은 아빠가 에스더의 유치원 등원도 보지 못하고 육지로 취재하러 떠났던 날이었단다. 인천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언니, 오빠를 포함해 304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하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정말 슬픈 날이었어.

아빠는 설마 했었어.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신문에서도 구조가 됐고, 방송에서도 ‘전원 구조’라는 말이 나왔었거든. 하지만 그날 배 안에 있던 언니,오빠, 삼촌들 중 9명은 아직도 가족들 곁으로 오지 못하고 있어.

에스더가 유치원을 졸업을 하고 얼마 안 있으면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세월호라는 배는 아직 꺼내지도 못하고,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 있단다.

아직 에스더는 왜 언니,오빠들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먼 훗날이라도 꼭 기억해줘야 한단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아픔이 또다시 나오면 안 되잖아? 에스더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빠도 꼭 노력할게.

‘2015년, 메르스의 창궐,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메르스 때문에 아빠, 엄마는 걱정했어도. 늘 잘 먹고 잘 노는 에스더와 요셉이를 보면 든든했었단다.

에스더가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던 2015년 5월, 대한민국에는 ‘메르스’라는 무서운 병이 돌았어. 무려 38명의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갔단다.

메르스 때문에 육지에서 난리가 났지만, 다행히 제주에서는 그리 심하지 않았고, 에스더와 요셉이가 잘 먹고 튼튼해서 아빠는 다행이었다고 생각했어. 에스더와 요셉이 모두 아직 어렸고, 혹시라도 병이 발생하면 우리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는 대처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란다.

에스더는 모르겠지만, 그때 보건복지부 장관이라고 대한민국의 건강을 책임진 아저씨는 지금 구속됐어.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데 엉뚱하게 돈 많은 사장 아저씨와 대통령 할머니와 짜고 나라를 망치는 일을 했거든.

돈이 많이 있으면 에스더는 좋을 것 같지? 하지만 세상은 돈과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어떻게 돈을 벌고 힘을 어떻게 쓰는지 그 과정이야.

남을 괴롭혀서 돈을 버는 것은 나쁜 짓이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마음대로 하는 일도 나쁜 일이야. 우리 에스더는 돈과 권력이 좋다고 해도,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결국 언젠가는 수갑을 차고 교도소로 가야 하거든.

‘2016년, 아빠와 떨어졌던 50일’ 

▲ 대구에서 대통령 할머니에게 찍힌 어떤 아저씨는 결국 쫓겨나서 지금은 다른 정당으로 갔고, 몽구 삼촌은 아빠 차를 보고 똥차라고 놀려댔단다. 그래도 아빠는 50일 만에 에스더와 뽀뽀해서 너무 좋았어.

작년에는 에스더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아빠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 무려 50일이나 아빠를 보지 못했잖아?. 아빠가 전화할 때마다 보고 싶다고 울었지만, 그래도 잘 참아줘서 고마워.

아빠가 삼촌들하고 전국을 돌아다닌 이유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야. 부산, 광주,대구, 강원도, 충청도 등 아직은 에스더가 가보지 못한 도시를 다니면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아저씨들을 만났는데, 이상한 아저씨들도 많이 봤어.

대통령 할머니에게 아부하고, 할머니하고 찍은 사진만 보여주면서 자신을 뽑아달라고 하는 아저씨들의 마음속에는 에스더와 같은 어린이는 물론이고 엄마,아빠처럼 평범한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어. 원래 그런 아저씨들을 뽑으면 안 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묻지도 않고 투표를 하기도 했어.

에스더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투표를 할 수 있을 거야. 그때는 이상한 아저씨들을 절대 뽑아주면 안 돼. 왜냐하면 그 아저씨들은 에스더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못된 사람들이나 나쁜 사람들을 위해 일하거든. 에스더가 20대가 되면 아빠가 자주 가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진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만 있었으면 좋겠어.

‘에스더를 키운 것은 아빠, 엄마만이 아니란다’

아직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에스더는 여기에 있는 삼촌,이모, 할머니들의 이름을 잘 모를 거야. 그런데 나중에라도 꼭 읽어야 한단다.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삼촌, 이모, 할머니들이 아빠, 엄마와 함께 에스더를 키워주신 분들이야.

에스더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할 때, 에스더가 터닝메카드가 갖고 싶다고 조를 때, 에스더가 클레이를 사고 싶을 때, 아빠가 척척 사줄 수 있는 것은 삼촌,이모, 할머니들이 사주라고 돈을 보내줬기 때문이야.

에스더와 요셉이 오빠가 잘 먹고 잘 자라야지 아빠가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아빠 대신에 에스더를 돌봐주신 고마우신 분들이야.

▲ 아빠, 엄마의 손이 아닌, 에스더 스스로 촛불을 들고 나가면서 당당하게 ‘민주주의’를 외치는 날도 오겠지?

에스더를 아빠와 함께 키워주신 삼촌, 이모,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꼭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 단지 민주시민으로 무럭무럭 자라면 기쁘다고 하신단다.

민주시민이 무엇인지 어렵지? 아빠와 함께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춤을 추고 노래하고 신나게 노는 그 자체가 ‘민주시민’이야. 오빠가 아빠에게 ‘독재자 할머니처럼 말하면 안 돼’라고 자신이 있게 얘기하듯이, 에스더도 잘못된 일을 보고 눈을 돌리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면 그것이 ‘민주시민’이야.

대한민국은 대통령 할머니의 나라도, 금배지를 달고 다니는 아저씨의 나라도, 태극기를 들었다고 큰소리 치는 할아버지들의 나라도 아니야. 에스더와 친구, 엄마, 아빠, 삼촌, 이모 등 우리 모두의 나라야.

이제 에스더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하기 싫은 공부도 해야 한단다. 하기 싫다고? 그런데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생각을 많이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대한민국이 아닌 이상한 아저씨들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요셉이 오빠처럼 몽구 삼촌 동영상도 찾아서 보고, 종훈이 삼촌이 쓴 기사도 읽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해.

에스더가 이 글을 읽고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지금은 아빠가 에스더를 대신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글로 남기지만, 나중에는 에스더가 스스로 살아가면서 겪었던 역사를 기록해야 해. 역사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는 일은 앞으로 에스더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거든.

에스더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아픔이 올지 모르겠지만, 항상 행복한 대한민국의 밝은 ‘민주시민’으로 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