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턴을 확대, 해외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든지.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포기하는 (청년) 세대 문제, 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자원봉사라도 나가서 어려운 일도 해보고... 스피릿(정신)이 중요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조선대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말들입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3일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김치찌개 집에서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인턴이나 보조사원으로 인성도 파악할 수 있는 계기 된다."라며 "그런 면에서는 2~3년 같이 일하다가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채용하는 이런 방법을 확대하면 어떻겠나"라며 '청년 인턴' 제도의 장점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반기문 전 총장이 '청년인턴'을 강조하는 이유는 '유엔'이라는 기구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턴들이 많고, 그들을 자주 봤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반기문 전 총장이 장려하는 '청년 인턴'이 과연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적합한 취업 제도일까요?

'텐트 치고 살아야만 했던 유엔 무급인턴, 결국 사직하다'

▲유엔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뉴질랜드 청년 데이비드 하이드가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파란색 텐트 앞에서 유엔 신분증을 목에 걸고 서 있다. ⓒ제네바 트리뷴 트위터.
▲유엔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뉴질랜드 청년 데이비드 하이드가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파란색 텐트 앞에서 유엔 신분증을 목에 걸고 서 있다. ⓒ제네바 트리뷴 트위터.


2015년 여름, 텐트 앞에서 양복을 입고 서 있는 한 청년의 사진이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데이비드 하이드, 그는 2015년 7월부터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사무국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 트리뷴'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데이비드 하이드는 유엔 인턴으로 채용은 됐지만, 급여가 없어서 제네바의 높은 물가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데이비드 하이드는 궁여지책 끝에 직장 근처 호숫가에 방수도 되지 않는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의 기아와 난민, 경제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유엔 직원이 난민처럼 살면서 유엔의 업무를 본 것입니다.

데이비드 하이드의 이런 상황은 유엔의 '열정 페이' 정책에 반감을 불러 왔고,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하이드는 “내 일보다 ‘무급 인턴’으로서의 삶이 너무 주목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더는 제네바에서 견디는 것도 힘들다”라며 인턴직을 사직했습니다.

'인턴에게도 경제력이 필요하다'

데이비드 하이드가 텐트를 치며 무급 인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알려지면서 비난의 목소리도 일부 있었습니다. 그런 경제력도 없이 왜 인턴을 했느냐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유엔에서는 인턴 면접을 볼 때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데이비드 하이드는 여러 차례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솔직히 얘기했다가 떨어진 경험 때문에 거짓말을 했고, 텐트를 치면서 버텼습니다.

▲유엔 인턴 모집 기사에 등장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유엔 인턴 모집 기사에 등장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인턴인권 활동가 타냐 드 그룬왈드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유엔이 면접에서 지원자의 경제 상황을 물어봤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라며 "하이드가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제네바인턴협회(GIA)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유엔 인턴의 68.5%는 무급입니다.  매년 162명의 인턴이 고용되고 있는 유엔에서 110명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무급이라도 정규직이 보장된다면 버틸 수 있지만, 대부분의 무급 인턴들은 무급 인턴십 후에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나름대로 출신 국가에서 대학을 나올 정도로 부유한 가정이지만, 급여 없이 장기간 버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6주 동안 인턴 생활하면서 든 비용만 500만원' 

2014년 주간동아는 "국제기구 취업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제목으로 무급 인턴십에 관련 소식을 보도됐습니다.

“제네바 물가가 너무 비싸 밖에서 사 먹을 엄두를 못 냈어요. 햄버거 세트가 거의 2만 원이었다니까요. 6주 동안 인턴 생활하면서 든 비용만 500만 원이 웃돌아요. 아는 인턴 중에는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기당할 뻔한 적도 있었고요. WHO 처지에선 오겠다는 사람이 많으니 아쉬울 게 없죠.” (스위스 제네바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강모씨의 인터뷰)

▲ 유엔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전직 유엔 인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
▲ 유엔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전직 유엔 인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


2009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6개월 간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다는 전직 유엔 인턴 직원 A씨는 '반기문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담'이라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A씨는 "유엔에서의 인턴 경험은 다른 것을 주고도 없을 수 없는 엄청난 가치"이지만 "뉴욕에서 무급으로 최소 2달간 인턴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리스크가 크다"라고 말합니다.

A씨는 후임 인턴이 "2달간 뉴욕에서의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해 오지 못했다"라며  "최소한 기회가 박탈될 수 있는 다음 인턴을 위해서, 숙박시설만큼은 적은 비용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기문 총장에게 영어와 한국어로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네바에서 열린 무급 인턴 관련 시위 모습
▲제네바에서 열린 무급 인턴 관련 시위 모습


'UNPAID IS UNFAIR'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무급 인턴' 때문에 비난을 받았습니다. 반 전 총장 때의 문제가 아니지만, 그는 10년간의 사무총장에 재임하면서도 불공정함을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대한 급여 지급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 정신이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 행보를 하는 반기문 전 총장은 노동이 아닌 '자원봉사'를 청년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취업을 하는 이유는 경제적 활동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보장되지 않은 취업을 위해 1천만 원 이상 드는 자원봉사나 무급 인턴을 하라고 강요하는 그 자체가 국민의 행복권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지난 연말, 저는 새해 청년 일자리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니 정부가 앞장서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모든 부처가 함께 노력해서 우선 7만 개의 청년 인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2009년 이명박)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20015년 박근혜)

"(일전에) 어려운 나라에 간 적이 있었는데, 자원봉사를 나간 한국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보고 하라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활하는 모습을 봤다." (2017년 반기문)

대출을 받아 해외 인턴을 가게 하는 대통령
웃으며 위험 지역으로 가라고 등을 떠미는 대통령
자신도 하기 힘든 일을 강요하는 유력 대선 후보

청년을 싸구려로,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소한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청년도 국민이기에 그들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누리고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포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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