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일 대구MBC의 신년특집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MBC 개쓰레기 아니가 이것들!'이라는 말이 자막과 함께 그대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MBC를 비난하는 장면이 나왔던 프로그램은 대구MBC가 신년특집으로 제작한 '깨어나 일어나'라는 촛불집회 관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래이션: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에 닫혀 있던 광장이 열리고,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광장을 채워갑니다.
리포터: 이거 들고 계시 길래 궁금해서.. 지난번에 며칠 전에 박대통령이 담화 발표할 때 자기는 국가의 공익을 위해서 했다라고 했고, 그 다음에 사익을 챙기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지금 다시 대구에서 토요일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시민: 여기 MBC에요 방송국? MBC 개쓰레기 아니가 이것들! MBC 제일 싫어한다. (카메라를 가리키며) 대통령 지지율이랑 여기 지지율이나 똑같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에게 리포터가 질문하자마자 시민은 '여기 MBC에요 방송국?'하고 묻습니다. MBC라는 사실을 알자, 시민은 'MBC개쓰레기 아니가 이것들'이라며 'MBC 제일 싫어한다'라고 말합니다. 시민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대통령 지지율이랑 여기 지지율(시청률)이나 똑같다'라며 신랄하게 MBC를 비판합니다.

자사를 비판하는 욕설에 가까운 말을 언론사가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구MBC는 그대로 내보냈고, 많은 시민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서울MBC와 다른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현재 유튜브에 올라온 '대구MBC 신년특집_깨어나 일어나' 동영상은 조회수가 5만이 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을 미화하는 서울MBC,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구MBC'

대구MBC의 영상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응원을 보낸다'는 목소리와 '왜 이제 와서 변신하느냐'는 비판이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MBC는 이전부터 서울MBC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관련기사: 같은 MBC 맞아? 서울과 대구의 전혀 다른 ‘사드 뉴스’)



지난 12월 대구 서문시장에 화재가 발생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화재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서울MBC는 '박 대통령은 기자단과 동행하지 않았고, 수행 인원도 최소화했다'라며 '큰 아픔을 겪고 계신 데 찾아뵙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방문했다'는 박 대통령의 방문 이유를 검증 없이 보도했습니다.

서울MBC는 '귀경길에 오른 박 대통령은 이동 중인 차량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청와대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구MBC의 보도는 달랐습니다. 대구MBC는 '박근혜 대통령이 10분 남짓 현장을 둘러 보는 동안 수십 명의 경호 인력이 대통령을 호위하고, 청와대 경호실이 방문 한 시간 전쯤 소방서를 찾아 방호복과 헬멧을 요구했다'라며 과잉 경호를 지적했습니다.

대구MBC 도성진 기자는 "건물 잔해나 잿더미를 들춰내고 불을 끄기 위해 이런 굴착기가 드나들어야 했지만, 대통령 방문을 전후해 굴착기의 진출입이 제한됐다"라며 화재가 완전히 진화도 되기 전에 방문해 오히려 장비 투입을 방해한 박 대통령의 일정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당시 '전원구조는 오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던 목포MBC처럼 지역MBC는 서울MBC와는 전혀 다르게 언론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엠병신 소리를 들은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 

▲촛불집회를 취재하는 MBC기자들에게 '엠병신'을 외치고 있는 시민들 ⓒ페이스북 캡처
▲촛불집회를 취재하는 MBC기자들에게 '엠병신'을 외치고 있는 시민들 ⓒ페이스북 캡처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 취재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선 MBC기자를 향해 시민들이 '엠병신'이라고 외칩니다. 시민들의 '엠병신'구호에 결국 MBC기자들은 내려옵니다.

촛불집회를 취재하던 MBC기자들은 '짖어봐','부끄럽지 않느냐'라는 시민들의 야유와 항의 속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 나간 기자는 마이크에 'MBC'라는 태그조차 달지 못했고, 심지어는 실내에 숨어서 촛불집회를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MBC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당연했습니다. 백만 명이 모였던 2차 촛불집회 당시 SBS는 특집편성까지 하며 34건의 관련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MBC와 별반 다름 없이 시민들의 비판을 받는 KBS조차 19건의 촛불 집회 소식을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MBC는 6.29선언 이후 처음으로 백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 소식을 단 8건만 보도했습니다.

MBC는 JTBC가 입수해 보도함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시초가 됐던 최순실씨 태블릿PC에 대해 다르게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태블릿PC가 조작이라는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의 말을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뒤늦게 '최순실 특별취재팀'을 구성했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돼 해체하기도 했습니다.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기자가 올린 'MBC막내기자의 반성문' ⓒ유튜브캡처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기자가 올린 'MBC막내기자의 반성문' ⓒ유튜브캡처


촛불집회 취재 도중 쫓겨났던 MBC 3년차 막내기자 곽동건, 이덕영, 전예지 등 세 명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이라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이들은 MBC가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시인합니다. '그 안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이제 와서 왜 이러냐는' 시민들의 비판에 대해 '혼내시고 욕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합니다.

MBC기자들은 시민들에게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당부합니다. 'MBC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십시오'라며 'MBC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쓰레기 언론 속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다'

1인 미디어로 활동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기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출입처 제도 속에서 특권은 누리면서도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자들을 보면 비판이 먼저 나옵니다. 하지만 무조건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소수이지만 참된 기자들이 얼마나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전국언론노조MBC본부 조능희 위원장이 MBC 로비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사측 직원에게 현수막을 뺏기고 있다.ⓒ전국언론노조문화방송본부
▲전국언론노조MBC본부 조능희 위원장이 MBC 로비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사측 직원에게 현수막을 뺏기고 있다.ⓒ전국언론노조문화방송본부


MBC기자 중에서는 해직된 사람도 있지만, 비제작부서로 발령받아 마이크를 뺏긴 기자들도 50명 이상이나 있습니다. 195억 원에 이르는 손배소와 징역형이 구형된 업무방해죄 등으로 법정 투쟁을 벌이는 동안, 제3노조라는 기업노조까지 등장했습니다.

취재도 할 수 없고, 징계와 소송을 당하면서도 기자들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MBC를 제대로 된 언론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회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냉담합니다. 해직되고 몇 년이 흐르니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합니다.

 

JTBC가 잘하고 있으니 다른 언론은 포기해도 될까요? MBC가 비록 지금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버리면 안 됩니다.

모든 언론사가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합니다. 모든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사회 부조리를 고발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쓰레기 언론 속에서도 꽃은 피어날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잡초 속에서 보이지 않겠지만, 작은 꽃씨가 광활한 꽃밭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끝까지 지켜봐 줘야 합니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국민들은 어둠 속에서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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