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논란을 겪고 있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검찰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12월 19일 서울중앙지검 형사 제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이 제기한 미인도 위작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검찰은 “미인도 소장이력 조사,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미술계 전문가 자문,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와 위작자를 자처해온 아무개씨 등에 대한 조사 내용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검찰의 발표까지 나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과 증거는 위작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배경을 조사했습니다.

'미인도가 위작인 결정적인 이유들'

▲2016년 2월 14일 방영된 SBS스폐셜의 '소문과 거짓말, 미인도 스캔들' ⓒSBS 캡처
▲2016년 2월 14일 방영된 SBS스폐셜의 '소문과 거짓말, 미인도 스캔들' ⓒSBS 캡처


① 천경자 화백 본인이 그린 적이 없다는 '미인도'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증거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천경자 화백 본인이 자신은 미인도를 그린 적이 없다고 계속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미인도의 위작 시비가 나온 것은 1991년이었습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복제품 보급운동의 일환으로 소장 중이던 미인도를 아트 포스터로 제작해 5만원에 대량으로 판매했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이 포스터를 보고 "아이를 낳듯이 작품을 발표하는데 자기 자식도 못 알아 본단 말인가?"라며 위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천경자 화백이 미인도는 위작이라고 주장했지만, 진품이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원래 위작 여부는 작가의 판단과 의견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미술계는 천 화백의 주장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결국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하고 작품 활동을 중지합니다.

② 위조전문가 권춘식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

1991년 위작 시비가 있었던 미인도 논란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99년입니다. 당시 고미술협회 간부, 화랑경영자, 고미술품 감정사 등이 국보급 문화재를 대량으로 위조해 유통해오다 검찰에 적발됐습니다.

이때 구속된 위조전문가 권춘식씨는 검찰에 "논란을 빚은 작품을 포함해 84년 천씨의 미인도를 3점 그렸다"라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권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무시됐습니다. 왜냐하면 미인도 그림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된 것은 1980년이기 때문입니다.

연도가 다른 권씨의 진술로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권씨가 굳이 위작을 그렸다고 진술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놓고 본다면, 연도 오류 하나로 위작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③ '장미와 여인' 작품과 똑같은 구도의 '미인도'

▲검찰보고서에 제출된 '미인도'와 '장미와 여인' 비교 분석 자료. 두 작품의 구도가 일치한다. ⓒ문범강
▲검찰보고서에 제출된 '미인도'와 '장미와 여인' 비교 분석 자료. 두 작품의 구도가 일치한다. ⓒ문범강


미인도를 위조했다는 권춘식씨는 달력과 복사본으로 나온 천 화백의 그림을 보고 미인도를 그렸다고 합니다. 권씨는 '꽃과 나비, 얼굴 형태를 각각 다른 그림에서 본떠 미인도를 완성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천경자 화백의 사위이자 서양화가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는 컴퓨터 전문가의 도움으로 컴퓨터그래픽 기법으로 '장미와 여인'과 '미인도'를 분석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두 작품의 구도와 형태, 배치 등이 일치했습니다. 문범강 교수는 이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도 아니라고 주장했고, 위작을 그린 위조전문가도 자신이 그렸다고 진술했습니다. 컴퓨터로 분석한 결과도 위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연도의 오류 등으로 검찰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재규를 죽이기 위해 조작한 '미인도'

▲1979년 12월 8일 발표된 신군부의 김재규 비리 혐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된 작품 중에 ‘미인도’가 포함됐다.ⓒ경향신문
▲1979년 12월 8일 발표된 신군부의 김재규 비리 혐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된 작품 중에 ‘미인도’가 포함됐다.ⓒ경향신문


미인도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79년 박정희를 사살한 김재규의 재판 과정 중입니다. 1979년 12월 8일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사령부는 김재규의 비리 사실을 발표합니다.

계엄사는 '김재규가 10억의 공금을 횡령하고, 그의 집에서 3천만원 상당의 호화자개장과 싯가 1천만원 상당의 고려청자를 위시하여 고가 자기류, 고서화 1백 여점이 나왔다'라고 발표합니다.

미인도를 소장하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은 '문제의 미인도는 김재규 전 중앙본부장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국고로 환수돼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이며 1980년 5월에 입수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인도를 김재규가 소장했고 박정희 사살 등으로 체포돼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관됐다는 과정을 보면 허술합니다. 우선 천 화백은 김재규에게 미인도를 선물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중정 요원에게 다른 작품을 선물했지만, 이마저도 다시 돌려줬다고 합니다.

이돈명, 강신옥 등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김재규의 구명운동을 펼쳤던 함세웅 신부는 “10.26사건의 재판기록 어디에도 고서화 등에 관한 기록은 없었으며, 신군부가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김재규를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조작된 얘기”라고 밝혔습니다.

▲1979년 12월 20일 김재규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동아일보
▲1979년 12월 20일 김재규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동아일보


전두환 신군부가 장악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김재규의 비리 혐의를 발표한 날은 12월 9일이었고, 이날은 김재규가 재판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결국, 미인도 위작 논란의 시작은 비리 등을 통해 김재규를 파렴치범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79년 12월 20일 김재규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재규는 부정축재나 비리 혐의가 아닌 '내란목적살인죄 및 내란미수죄'였습니다.

김재규를 가리켜 유신정권을 끝낸 ‘의사’(義士)'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통령을 살해한 살인범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아직 이릅니다. 왜냐하면 박정희에게 최태민과 박근혜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린 인물이지만,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박근혜씨는 2016년까지도 국정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예술가의 작품은 다양한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자들이 예술가들을 권력에 이용했다는 사실은 1979년이나 2016년이나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 대신 아부와 권력을 휘두른 인물들을 주위에 두었던 대통령들의 최후가 어떤지 우리는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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