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처가 입법예고한 ‘재해구호법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응급구호세트에서 생리대를 삭제한다고 되어 있다. ⓒ국민안전처
▲국민안전처가 입법예고한 ‘재해구호법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응급구호세트에서 생리대를 삭제한다고 되어 있다. ⓒ국민안전처


2016년 7월 8일부터 재난현장에 지급되는 응급구호세트에서 생리대가 제외됩니다. 국민안전처는 다음 달부터 "“손거울․빗, 볼펜, 메모지, 손전등, 우의, 생리대”를 삭제하고 “바닥용 매트(140×200, 우레탄, 방수) 1개, 슬리퍼(대, 중, 소) 1족, 안대 1개, 귀마개 1개”를 추가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안전처의 생리대 제외는 지난 4월 22일 입법 예고한 '재해구호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 때문입니다. '재해구호법 시행규칙' 제3조에는 '비상식량·침구·의류 등 필요한 재해구호물자를 충분히 확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시행규칙에는 별도로 재해구호물자의 종류 및 기준을 정해 놓고 있으며, 국민안전처는 명시된 재해구호 물자를 확보 또는 파악해야 합니다.

'면도기는 유지하고 생리대는 제외한 국민안전처'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재해구호물자의 종류 및 기준 ⓒ국가법령정보센터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재해구호물자의 종류 및 기준 ⓒ국가법령정보센터


현행법으로 확보해야 하는 재해구호물자는 여성과 남성 등 개인에게 지급되는 응급구호세트와 1세대 4명 기준으로 지급되는 '취사구호세트'가 있습니다.

시행규칙을 보면 응급구호세트 남성용과 여성용에는 '담요, 칫솔, 세면비누, 수건, 화장지, 베개, 손거울(빗), 볼펜, 메모지, 손전등, 우의, 면장갑, 간소복, 속내의, 양말'이 공통으로 들어갑니다. 공통 품목 이외 남성용에는 '1회용 면도기 1개'가 여성용에는 '생리대 일반 중형 1조'가 포함됩니다.

국민안전처는 남성과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손거울(빗), 볼펜,메모지, 손전등,우의'를 삭제하면서 여성에게 지급되는 '생리대'를 제외했습니다.

남성용 면도기는 유지하면서 여성용 생리대는 제외한 국민안전처의 결정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면도를 하지 않더라도 신체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소지는 적지만, 생리대의 경우는 여성에게 필요한 물품인 동시에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성마다 취향이 달라 생리대를 제외했다는 국민안전처'

시사오늘 김인수 기자에 따르면 국민안전처는 "생리대는 오래보관 할 경우 변질의 우려성이 있고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 개인별 취향이 다르는 등 의견사항을 조정해서 제외시켰다”고 합니다.

▲지난 4월에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재해구호물자 개선대책 ⓒ국민안전처
▲지난 4월에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재해구호물자 개선대책 ⓒ국민안전처


국민안전처는 '변질의 우려성' 때문에 응급구호품목에서 생리대를 제외했다고 설명했지만, 통상적으로 생리대는 유통기간이 3년으로 꽤 긴 편입니다. 국민안전처는 2016년 4월 재해구호물자 관리 개선대책에서 '비축기준의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입니다.

또한, 국민안전처가 '여성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리대를 제외한 부분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생리대가 필요한 여성이 자신이 사용하던 제품과 달라 사용하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재난 현장 여성에게 절실한 생리대'

태풍이나 지진으로 발생한 재난 현장에서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물품 중의 하나가 생리대입니다. 여성신문에 따르면 2013년 초강력 태풍 하이옌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필리핀 NGO 관계자들은 '여성의 경우 속옷과 생리대 등 기본적인 위생용품을 구할 수 없고 화장실도 부족해 질염 등 생식기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면서 생리대가 절실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생리대, 분유가 절실해요)

불과 얼마 전에 여학생이 생리대를 구입할 돈이 없어 학교에 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지자체에서는 저소득층 학생에게 생리대를 무료로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생리대는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닙니다. 여성의 건강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중요한 구호물품 중의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제대로된 조사 없는 정부의 법 개정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재해 현장에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구조해야 하는 정부가 여성의 건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부분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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