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린조항삭제01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일본군 강제동원','위안부' 등의 내용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4월 10일 일본 국회에서 가진 답변을 통해 "일본에서 태어나 자랑스럽다는 역사 인식이 교과서에 기재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본 교과서 검정 제도를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도 이날 국회 답변에서 "유감스럽게도 교과서 검정 기준이 애국심과 향토애를 존중하도록 한 개정 교육 기본법의 정신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교육적 관점에서 교과서가 채택되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과 아베 신조 총리의 국회 발언은 최근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일부 교과서에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 했다고 명시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근린제국조항과 자학사관'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은 일본 교과서 수정을 놓고 '근린제국조항'을 삭제하고 앞으로 '자학사관'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근린제국조항'은 1982년 11월 일본 문부성이 밝힌 교과서 검증 기준입니다. 한국,중국 등에서 제기된 역사 왜곡 주장을 수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교과서 기술시 한국,중국 등 근린제국의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인다'는 이야자와 기이치 일본 관방장관의 담화로 시작된 기준입니다.

이 조항에 따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한국,중국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기도 했으며, 역사 교과서를 기술하면서 용어 선택을 일본측 주장만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고 한국,중국의 입장과 비교해서 싣기도 했습니다.

'자학사관'은 후지오카 노부카즈라는 사람이 주장했던 역사관으로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같은 자학적인 역사는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는 잘못된 역사관이니 삭제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결국,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주장하는 '근린제국조항' 삭제와 '자학사관' 폐기는 앞으로 한국,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들만의 시각에서 역사를 평가하고 기술하겠다는 대놓고 '역사왜곡'을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정확히 알아야 할 일본 교과서 왜곡의 목표'

우리가 흔히 일본 교과서 왜곡을 단순히 일본 극우세력의 망언이나 일부 언론보도만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전반에 걸친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일본교과서왜곡사례01일본 교과서 왜곡의 핵심은 자신들의 '침략'을 어쩔 수 없는 '진출'로 둔갑시키는 정신에 있습니다. '오사카서적'이 2001년 검증에 통과한 내용을 보면 97년 개정판에 있던 '제국주의 제국국의 세계와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라는 항목을 아예 '일청,일로 전쟁과 아시아의 정체'로 바꿨습니다.

'일본의 조선지배'라는 제목도 아예 삭제했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를 침략했다는 사실을 국제 정세의 어쩔 수 없는 영향 때문이라고 왜곡한 사례 일부입니다.

'제국서원'의 교과서는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조선과 아시아인들의 고통을 삭제함으로 그들의 아시아침략이 결코 아시아인들에게 고통을 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습니다.

일본교과서왜곡사례02일본 교과서 왜곡의 중심에 있는 '새역모'의 교과서 등에는 이런 주장을 더욱 구체화했는데, 지유샤에서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일본의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결과가 '한국합병'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일합병은 한일병탄(남의재물이나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듦)으로 불러야 옳습니다.)

후소샤는 한술 더 떠서 아이들에게 한일병탄을 일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일이며, 일본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러시아에 지배됐을 것이라고 교과서를 가르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를 침략했던 전쟁을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미화하는 일본은 이런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자신들의 군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군국주의를 다시 노리는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서면서 일본은 '극우정치'로 바뀌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내각의 말을 보면 왜곡된 일본 교과서와 같은 망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베내각역사교과서왜곡망언01아소 다로 부총리는 "일제 강점기의 창씨개명은 조선인의 희망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이는 '도쿄서적'이 개정판에 일본 신사참배 동원 사진을 삭제하고 일본군에 스스로 지원하는 젊은이의 사진을 게재하는 역사 왜곡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성과학상의 '종군위안부는 없었다'는 주장은 도쿄서적,오사카 서적,교육출판 등의 위안부 삭제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으며 '자학사관'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는 자신들의 역사가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일본의 안전'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는 편향적인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본이 이렇게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는 침략전쟁을 미화시키면서 '일본의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로 인식시키면서 제2의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노림수입니다.

▲일본 방위성 앞에 배치된 지대공 유도미사일 패트리엇. 출처:도쿄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방위성 앞에 배치된 지대공 유도미사일 패트리엇. 출처:도쿄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일본의 재무장을 당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도쿄와 수도권 아사카,나라시노에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 등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일본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평화헌법'을 수정하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극우정치인들은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일본을 지키기 위한 숭고한 정신으로 미화하며, 이는 앞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의 예고가 아닌 이미 자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찌 그리 닮았는지요, 일본의 극우와 한국의 보수'

일본이 '자학사관'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얘기를 들으면 분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보수에서도 이런 일본의 망언을 규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학사관' 탈피는 비단 일본 극우정치가와 새역모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2005년 월7일 조선일보 사설
▲2005년 월7일 조선일보 사설


조중동은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사위원회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과거청산'을 하겠다는 노력을 끝까지 반대했던 집단입니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청산'이 '부끄러운 역사'를 부각하는 '자학사관'에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동아일보는 2007년 5월17일 '비만 과거사위'라는 기사를 통해 "경쟁국들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에 바쁜데 우리만 과거에 매달려 이렇게 혈세를 펑펑 써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극우세력은 '자학사관'을 좌파사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극도로 싫어하면서 일본의 미래를 새롭게 바꾸기 위해서는 '자학사관'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의 보수도 비슷합니다.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과거를 얘기할라치면 '자학사관'이라 부르며,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역사왜곡은 극우정치인과 극우학자,극우언론의 합작품이다.
▲일본 역사왜곡은 극우정치인과 극우학자,극우언론의 합작품이다.


새역모의 니시오 간지는 "한국인은 일본인의 악마성과 악마적 역사에만 집착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인의 영혼에 관한 문제다. 한국은 일본역사에 간섭하면 안된다"며 '자유주의사관'을 주장했습니다. 후지오카 노부카즈는 '자유주의 사관이란 역사 교육 현상(위안부 강제 연행설)을 개혁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고 '자유주의사관이란 무엇인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거나 전교조의 역사교육을 빨갱이라고 좌파로 모는 현상을 보면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 왜곡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극우와 한국의 보수가 가진 차이는 일본은 미국에 의존을 탈피하고 일본 스스로 재무장을 외치고 있지만, 한국은 오로지 미국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태종은 사냥중에 말에서 넘어진 사실에 대해 '사관은 알게 하지 말라'고 했으나 사관은 그가 사관은 알게하지 말라는 내용까지 태종실록에 적었다. 출처:사람사는 세상 노공이산.
▲태종은 사냥중에 말에서 넘어진 사실에 대해 '사관은 알게 하지 말라'고 했으나 사관은 그가 사관은 알게하지 말라는 내용까지 태종실록에 적었다. 출처:사람사는 세상 노공이산.


새역모의 교과서에서 중세부터 현대에 해당하는 부분을 집필했던 사카모토 다카오는 우익 잡지 세이론과 오키나와 류큐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위안부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화장실 구조에 관한 역사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교과서에 쓸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위안부 역사는 아예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무의미한 사안입니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그가 내릴 것이 아니라 사실로 기술된 역사를 읽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역사적인 사건이나 내용을 빠뜨리거나 미화하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왜곡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이 원하는 것은 일본의 재무장을 위한 진실의 왜곡입니다. 평소에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한국 보수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일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겠느냐는 탄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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