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상 최악의 선거 ‘6.8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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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를 흔히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를 꼽습니다. 그러나 1967년 6월 8일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최악의 부정선거라고 봅니다. 이유는 이승만이 벌인 ‘3.15 부정선거 수법 + 선거법 시행령 개정+관권 선거+삼선 개헌’ 등이 합쳐진 반헌법 행위의 완전체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고쳐 정권을 연장하는 집권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개헌 저지선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박정희는 제7대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 돈과 조직, 권력을 동원했고 마지막에는 개표 부정까지 저질렀습니다.

6.8부정선거가 최악인 이유 중의 하나는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9일 대통령과 장관 등 공무원이 선거 유세를 할 수 있도록 선거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입니다. 법을 바꿔서라도 선거에 이기겠다는 박정희는 외국의 사례에도 있다는 뻔뻔함을 보여줬습니다.

‘6.8 부정선거’가 끝나고 전국적으로 부정선거 규탄대회와 시위가 지속되자, 중앙정보부는 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발표합니다.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간첩에는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이응노가 있었고, 시인 천상병은 간첩사건에 연루돼 지독한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권력과 돈을 이용해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박정희 정권은 1969년 새벽 2시 33분에 공화당 107명, 정우회 11명, 무소속 4명이 참여한 헌법 개정안을 상정합니다. 2시 50분 122명 전원 찬성으로 헌법개정안은 통과됐고, 결국 박정희는 7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모든 반헌법 행위를 벌인 박정희의 모습을 보면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독재도 아버지를 닮나 봅니다.